하이브(HYBE) 산하 빅히트뮤직 A&R팀을 이끈 니콜 킴(김현정) 전(前) ‘방탄소년단'(BTS) 크리에이티브실 실장은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특히 ‘다이너마이트’ ‘버터’ ‘퍼미션 투 댄스’ 등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찍은 방탄소년단 글로벌 히트곡과 브릿팝 밴드 ‘콜드플레이’와 함께 한 ‘유니버스’ 등의 작업을 주도했다.
K팝의 전 세계적인 활약과 더불어 주목도가 커진 ‘아티스트 앤드 레퍼토리'(A&R), 즉 아티스트와 콘텐츠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수집하는 걸 총칭하는 일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주역 중 한명이다.
그런 그녀가 지난 5월 미국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산하의 대형 음반 레이블 ‘컬럼비아 레코드’ A&R 부사장(VP)으로 이직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업계의 관심이 컸다. 컬럼비아 레코드는 그간 비욘세, 아델, 해리 스타일스 등 굵직한 팝스타들의 음반 유통을 맡아왔다.
K팝의 전성기를 경험한 그녀가 방탄소년단을 기점으로 K팝의 북미 시장 진출이 활발해진 이 때 팝의 본고장에서 어떤 새로운 일을 펼쳐낼 지 기대감을 키웠다. 그녀는 하이브 몸 담기 전 소니뮤직퍼블리싱 한국지사와 스타쉽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한 한국통이기도 하다.
니콜 킴 부사장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5일부터 오는 9일까지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서울과 홍대 일대에서 펼치는 아시아 최대 뮤직 마켓 ‘2023 뮤직·엔터테인먼트 페어-뮤콘(MU:CON) 2023’ 연사로 참여하기 위해 잠시 귀국했다. 지난 6일 마련된 오픈 세션 ‘대중음악의 힘’에 참여해 현 대중음악계 통찰을 나눴다.
다음은 니콜 킴 부사장과 만나 나눈 일문일답.
-컬럼비아 레코드의 업무나 분위기는 한국 회사들과 많이 다른가요?
“한국은 진행 개발팀이 아티스트를 육성하거든요. ‘트레이닝 시스템’을 갖추고 연습생을 교육해서 아티스트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있죠. 미국에선 다양한 곳에서 혼자 하는 아티스트들을 발굴해내는데 힘이 실려 있어요. 이런 부분이 업무적으로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최근 하이브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 JYP엔터테인먼트 ‘A2K’처럼 K팝 시스템을 미국 팝시장에 이식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K팝 시스템에 대해 실제 해외 음반사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나요? 관심이 있다면, 어떤 지점에서 효과가 있다고 판단을 하고 있는 건가요?
“K팝 시스템을 통해서 방탄소년단, 블랙핑크처럼 전 세계적으로 큰 아티스트들이 나왔기 때문에 관심은 분명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아직 합작을 시도하는 단계라 결론을 당장 내리기는 힘들 것 같아요. 이 협업이 어떻게 될지 많은 음반사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빅히트 뮤직 A&R을 이끄셨는데 특히 방탄소년단이 글로벌로 도약하는 시기에 함께 하셨어요.
“시기적으로 모든 게 정말 완벽했어요. 방탄소년단은 본인들 일을 제일 열심히 하는 분들이에요. 방시혁 의장님 같은 뛰어난 프로듀서가 있는 데다 그 주변에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도 너무 합이 되게 잘 맞았죠. 팬덤도 아티스트에 대한 많은 서포트를 해주셨고요. 그렇게 정말 우주의 기운이 모인 것처럼 모든 합이 잘 맞아떨어져서 성장을 쭉 할 수 있었습니다.”
-업계에선 그 시기에 대해 분석을 하면서 코로나 팬데믹도 큰 영향이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되게 크게 작용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 팬데믹이 시작했을 때, 아티스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월드 투어를 비롯 계획을 다 세웠는데 상황이 좋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한국 아티스트들은 본거지가 한국이잖아요. 그래서 미국에서 물리적으로 프로모션을 하거나 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현지 아티스트와 동등하다고 볼 수 없죠. 그런데 팬데믹 때 미국 아티스트든 한국 아티스트든 집 밖으로 못 나가는 건 마찬가지였죠. 모두가 틱톡, 유튜브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보니 아티스트가 어디에 있든 조건이 같아졌던 거예요. 또 사람들이 집에만 있다 보니까 미국 라디오 사용률이 자연적으로 떨어졌고(대중교통 이용률이 비교적 낮은 미국은 주로 라디오를 자차로 출퇴근 등을 할 때 듣는다) 틱톡,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의 사용량이 쭉 올라가면서 저희 쪽에서도 현지 접근이 더 쉽지 않았었나 생각합니다.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K팝 아티스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던 거죠.”
-팬데믹 시기는 방탄소년단의 첫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를 낸 시점과도 맞물렸었잖아요. 시기적인 배경에 따른 결정이었나요?
“방탄소년단 팀 자체가 계속 뭔가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요. 영어 싱글도 그 일환이었죠. 개인적으로는 일본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 일본어 버전의 곡이나 일본어 오리지널 곡들을 내는데 많은 팬들이 쓰는 영어로 내는 게 왜 어려울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사람들이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해서 곡을 내는 게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퍼미션 투 댄스’ 같은 경우엔 원래 노랫말이 청혼을 이야기하는 개인적인 사랑에 가까웠다고요.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를 하는 팀인데 청혼은 당시 먼 허구의 이야기였어요. 원래는 청혼을 하면서 ‘나랑 같이 춤을 춰주겠냐’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팬데믹이 끝나는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고민을 했죠. ‘이제 우리 다 같이 춤을 추면서 다시 행복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는 얘기를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대중 음악, 특히 K팝이 대중을 사로잡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K팝은 ‘웰메이드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언어나 지역 등 물리적인 것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 보여질 기회가 적었을 뿐이었지, 다른 나라 엔터 콘텐츠들에 비해 경쟁력이 낮지 않아요. 콘텐츠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 되게 뛰어나죠. 최근 K팝뿐만 아니라 영화도 그렇고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도 그렇고 한국 콘텐츠가 해외로 많이 나가고 있잖아요. 특별하고 대단한 마케팅을 했다기보다 일정 수준에 오른 콘텐츠라 그렇다고 봐요.”
-그러면 좋은 곡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사실 곡이 좋냐 좋지 않냐는 되게 주관적인 거예요. 기준을 설명하기 힘들죠. 다만 제가 곡을 찾고 고를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티스트한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예요. 또 아티스트가 얼마나 잘 소화해낼 수 있는지도 중요하죠. 아무리 좋은 곡을 찾아와도 아티스트랑 안 맞는 곡이면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어려우니까요. 또 대중음악으로서 좋은 곡은 아티스트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얘기들이 잘 들어간 동시에 팬들이 원하는 것들도 좀 들어가 있는 거죠. 양 측의 협의점에 어느 정도 위치해 있는 게 대중음악으로서 좋은 곡이지 않을까 싶어요.”
-미국에서 바라보는 K팝에 대한 시각은 또 다를 거 같습니다.
“제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리면, 저도 한국에 있을 때 ‘미국에서는 어떤 것들을 더 좋아할까’ ‘어떤 게 글로벌한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미국 시장에서 보니 꼭 한국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그냥 원래 가지고 있는 색깔들을 잘 표현해내는 아티스트가 더 오리지널리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가지고 있는 거를 더 멋있게 표현해내는 게 더 맞는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외국과 협업 시스템, 다국적 멤버들 이슈가 많은데 K팝 장르를 정의해주실 수 있다면요.
“계속 정의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콜롬비아 출신인) 샤키라도 영어를 쓰는 아티스트가 아니죠. 제일 유명한 ‘웬에버 웬에버(whenever wherever)’도 영어곡이에요. 그렇다고 샤키라가 라틴 아티스트가 아닌 게 됐냐. 그건 아니거든요. (영어와 불어가 공용어인 캐나다 출신인) 셀린 디온 같은 아티스트도 모국어로 영어인 걸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텐데 원래는 불어밖에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영화 ‘타이타닉’ 주제곡인) ‘마이 하트 윌 고 온’을 통해 글로벌 스타가 됐죠. 그러니까 좀 더 많이 쓰이는 언어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음악을 알릴 수 있으면 그건 하나의 수단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아티스트 본인이 가지고 있는 원래 색깔이나 뿌리를 버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최근 ‘아이브’와 ‘트레저’도 컬럼비아 레코드와 북미 진출을 위해 함께 협업하기로 했습니다.
“컬럼비아 레코드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는 대형 레코드사에서 케이팝 아티스트들에게 관심이 있는 건 너무나 분명해요. 이젠 이걸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일 것 같아요. 방탄소년단 활동 초기에만 해도 미국 레이블이랑 계약을 하는 한국 아티스트는 거의 없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거의 무조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많은 회사들이 계약을 하고 있어요. 수요가 많아지고 있는 만큼 양쪽 시장엔 당연한 일인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A&R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어렸을 때 저도 가수를 하고 싶어서 준비를 했었어요. 그런데 엔터 일을 준비하다 보니 그 안에 많은 직군과 부서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 중에서도 A&R이 제일 하고 싶었어요. 가장 중요한 부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래요. 엔터테인먼트가 종합 비즈니스 시대라, 당연히 음악만 좋다고 무조건 ‘대박이 난다’고는 할 수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의 제일 본질적인 본업은 음악을 하고 노래를 하고 앨범을 만드는 일이죠. 그 코어가 되는 음악 관련해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래피를 쭉 잘 짜야 결국 아티스트도 좋은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사실 아티스트분들이 광고도 하고 연기도 하고 패션 관련 일도 하지만 본업을 잘 이어 나가기 위해선 A&R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죠.”
-미국으로 옮겨가시면서 새롭게 생긴 목표나 프로젝트가 있나요?
“K팝이 미국 시장에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 안에서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고요. 그 외에도 저한테 도전은 K팝이 아닌 콘텐츠들을 해보는 거예요. 컬럼비아 레코드에서도 K팝뿐만이 아니라 제 경험들을 가지고 일을 했었을 때 좋은 시너지가 있을 거 같다며 제안을 해주셨어요.”
-빤한 질문 같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대형 음반사에서 여성 임원이 되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여성이라 불이익을 당했거나 반대로 혜택을 받은 것도 없었어요. 일을 하다 보니 맞는 포지션의 기회가 왔죠. 다른 분들도 그 자리에 맞는 분들이면 충분히 하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성비가 회사마다 꼭 비슷한 비율로 있는 것보다 포지션에 맞게 성비가 채워질 수 있는 거죠. 개개인의 차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K팝 역사의 전성기를 만드는 중심에 계셨잖아요. 방탄소년단 만큼의 성공이 다시 올 수 있을 거냐에 대한 논의도 많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방탄소년단이 세운 기록이 되게 어렵긴 하거든요. 그래서 이들을 뛰어넘는 팀이 금방 나올 것이라고 얘기하기는 힘들어요. 다만 방탄소년단이 미국 아티스트들이랑 동등하거나 혹은 그들을 뛰어넘는 기록들을 만들고 현지 시장을 열어줌으로써 후발주자 분들에게 훨씬 편한 길이 열린 건 맞죠. 2017년에 제가 미국 관련된 일을 할 때만 해도 업계에 미팅 요청을 하면 대답을 못 듣는 경우가 엄청 많았었거든요. 회신도 없고 전화를 해도 연락이 안 되고요. 만나도 큰 관심이 없기도 했죠. 그런데 방탄소년단이 산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 현지 업계 관계자나 산업에 있는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K팝을 올려놓았어요. 이제 막 출발하시는 아티스트 분들은 기준 자체가 되게 높아져서 부담은 될 수도 있겠지만 접근하는 길 자체가 쉽게 열렸으니 더 많은 기회가 생겼죠. 실제 방탄소년단 초창기엔 콘셉트에 대해 반신반의했는데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투바투)의 경우 앞에 너무 좋은 예시가 있었기 때문에 좀 더 현지에서 받아들이는 게 쉽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