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간 강력한 협력 체제를 구축한 윤석열 대통령이 차기 외교의 초점을 중국에 맞추는 중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으로 한반도 안보 위협이 가시화된 가운데 중국과 거리를 좁히며 북러 견제의 연대에 나선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건 중국도 마찬가지다. 주요2개국(G2) 주도권 싸움 중인 중국의 목표는 국제 무대에서의 그립감이다. 국제 사회의 ‘왕따’인 북한, 러시아와의 진영을 공고화하는 건 중국으로서도 이해타산에 맞지 않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의사는 상징적이다.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신호다.
시 주석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중국 항저우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를 만나 “방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측 요청이 이뤄지기 전 시 주석이 먼저 방한을 이야기했다는 게 외교부 고위당국자의 전언이다.
시 주석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7월 국빈 방한을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2차례나 중국을 찾았지만 답방은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올해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9년만에 중국 정상이 한국을 찾게 되는 셈이다.
윤 정부, ‘한미일 경도’ 비판 벗어날 듯…’한중’ 소통 가속도
시 주석의 방한 발언으로 윤석열 정부의 대중 외교 성과가 가시화되며 “정부의 외교가 ‘한미일’에 경중됐다”는 비판도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미국과 일본에 치우친 외교를 한다며 여러 차례 지적했다. 심지어 ‘야당이라도 중국과 이야기를 하겠다’며 이재명 대표가 단독으로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와 만나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미일 관계가 개선된다고 중국과 멀어지는 게 아니다. 외교란 한 국가와 가까워진다고 다른 국가와 멀어지는 게 아니다”며 “시 주석의 방한 발언 역시 양국 정상간, 그리고 실무적으로 관계가 개선됐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뉴시스에 말했다.
한 외교 당국자는 “윤 대통령의 이번 유엔 총회 연설에 중국이 없었다. 꾸준히 국제무대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비판하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며 “이미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중 양국의 소통은 보다 강화되는 중이다.
윤 대통령은 작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약 25분간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한 바 있다. 그 뒤로 특별한 진전이 없던 양국은 지난 7월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회동 이후 소통에 속도가 붙었다.
이달 7일 윤 대통령과 리 총리의 양자회담, 보름 만인 지난 23일 한 총리와 시 주석의 양자회담 등 최고위급 소통이 성사된 것이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항저우에서 기자들과 만나 “작년부터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정상회담을 하고, 또 최근에 대통령과 리창(李强) 중국 총리가 회담을 했다”며 “정상급이 아닌 차원에서도 경제분야에서 외교부 차관급 회의 등이 이뤄졌다”고 했다.
이같은 배경을 이해한다면 한 총리과 시 주석의 만남은 한중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아닌, 이미 진전된 한중 외교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외교 당국자는 설명했다.
북한-러시아 밀착, 한국과 중국 이해관계 맞아 떨어져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 행보는 오히려 한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붙였다.
북러 밀착은 우리나라의 심각한 안보 위협을 야기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러시아와 북한 간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건 바로 중국이다. 한 총리가 전날 시 주석에 한반도 정세를 이야기하며 “중국 측이 건설적 역할을 계속해달라”고 요청한 이유다.
중국으로서는 ‘북중러’ 블록 형성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이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5%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하향 조정한 가운데 국제사회의 ‘왕따’나 다름없는 북한, 러시아와 같은 진영을 만드는 건 이해타산에 맞지 않다.
주요2개국(G2) 주도권 싸움 중인 중국의 목표는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와 상하이협력기구(SCO)는 모두 글로벌 사우스(개발도상국)에서의 영향력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 가운데 중국이 북한,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한다면 신(新)냉전 질서를 형성한다는 국제무대의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한 외교 당국자는 “결국 중국의 목표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라며 “중국은 결국 한미일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