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22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최종 등극하면서,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나흘간의 민주당 전당대회가 마무리됐다.
민주당은 해리스 체제로 대선을 치르기 위한 절차를 완료하는 동시에,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당내 확고한 지지를 확인했다. 사상 초유의 대선 후보 공백 사태를 32일 만에 봉합하고, 해리스호 출항을 알렸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열린 4일차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 나서 “여러분들의 대선 후보 지명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달 21일 민주당 경선을 승리하고도 사퇴 압박에 시달리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면서 대권 가도에 몸을 실었다. 대선을 불과 107일 앞둔 시점이었다.
극심한 혼란이 빚어질 수도 있었으나, 바이든 대통령 지지를 등에 업은 해리스 부통령은 재빠르게 당내 여론을 규합했다. 지난 5일 종료된 대의원 화상 투표에서 99% 지지로 후보 지명이 사실상 확정됐다.
민주당은 지난 22일 이틀차 전당대회에서 해리스 부통령과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대선 후보와 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월즈 주지사는 전날,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지명을 수락하며 대선을 정조준했다.
해리스 위해 똘똘 뭉친 전현직 대통령…트럼프와 대조
전당대회는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후보직을 공식화하는 성격도 있었지만, 당내 결집과 지지를 확인하는 성격이 더욱 컸다. 대선을 위한 출정식인 셈이다.
바이든,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지미 카터 등 민주당 전현직 대통령들이 해리스 부통령 지지에 앞장서면서 당내 결집을 강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당대회 첫날 무대에 올라 사실상 지도자의 횃불을 해리스 부통령에게 넘긴다고 선언했다. 달변가인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튿날 연설에서 2008년 대선 승리 구호인 “예스, 위 캔(yes, we can)”을 본떠 “예스 쉬 캔(yes, she can)”으로 힘을 실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3일차에 직접 연설했고, 100세 생일을 맞이하는 카터 전 대통령도 손자를 통해 지지 의사를 전대장에서 전달했다.
이 밖에도 미셸 오바마 여사,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낸시 펠로시(캘리포니아) 전 하원의장, 하킴 제프리스(뉴욕) 하원 원내대표,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등 신구 권력들이 모두 해리스 부통령을 외쳤다.
이는 지난달 공화당 대선 후보로 등극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당내 압도적인 지지로 후보가 됐으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딕 체니 전 부통령, 댄 퀘일 전 부통령,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은 모두 전당대회를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트럼프 ‘성토의 장’…”백악관 복귀 상상해보라”
역설적으로 해리스 부통령의 대권 도전의 가장 든든한 우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나라를 넘길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욕심을 내려놨고, 민주당원들이 신속하게 해리스 체제를 빠르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실제 해리스 부통령은 역대 가장 인기없는 부통령으로 평가됐으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서는 러닝메이트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왔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이러한 배경이 비교적 선명히 드러났는데, 거의 모든 지지연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하고, 그에 반해 해리스 부통령이 적합한 지도자라는 형식을 취했다.
등장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던 클린턴 전 장관은 “검사로서 카멀라는 살인자와 마약상을 가뒀지만, 트럼프는 34개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대선에 출마하는 첫 대통령이 됐다”며 “카멀라는 아이들과 가족, 미국을 걱정하지만 도널드는 오직 자신만을 걱정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당대회에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지지 연설에 나선 앤디 김(뉴저지) 하원의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관여한 2021년 1월6일 의회폭동 사태를 언급하며 “우리가 보고있는 이 혼란을 항상 기억하자. 이런 식이 돼 서는 안 된다. 아버지로서, 우리 아이들이 망가진 미국에서 자랄 운명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당대회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연설에 나선 해리스 부통령 역시 “도널드 트럼프는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며, 그를 백악관에 복귀시키는 결과는 극도로 심각하다”며 “특히 연방대법원이 형사처벌 면책 결정을 내린 이후 그가 갖게 될 권력을 상상해 보라”고 경고했다.
해리스 외교정책 윤곽…대북 원칙론 확인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그간 안갯속에 가려져 있던 해리스 부통령의 외교정책 방향, 특히 대북 정책 방향도 어느정도 윤곽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 부통령은 후보 수락 연설에서 “나는 트럼프를 응원하고 있는 김정은 같은 독재자, 폭군들에게 알랑대지 않을 것이다”고 힘줘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폭군, 독재자라고 규정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협상만을 목표로 달려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면서 외교적 대화를 촉구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방향성을 그대로 따를 것으로 보인다.
콜린 칼 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지난 20일 “한반도 비핵화는 여전히 이 행정부의 목표”라면서도 “단기적 우선순위는 한국에 대해 동맹을 보호한다는 약속을 분명히하고, 북한 위협을 받는 일본과 같은 동맹국들과도 긴밀히 협력하면서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펠로시 전 하원의장,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민주당 주요 인사들도 전대 기간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계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토크쇼 여제도 해리스 지원사격…스위프트 출연은 없었다
전당대회 기간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문화, 예술, 방송, 스포츠계 인사들도 직간접적으로 무대에 올라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지난 21일에는 ‘토크쇼 여제’ 오프라 윈프리가 깜짝 등장해 특유의 말솜씨로 청중을 휘어잡았다. 윈프리는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미국은 여전히 계속되는 프로젝트”라며 유권자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이날은 최근 2024 파리올림픽에서 미국에 금메달을 안겨준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스테판 커리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해리스 부통령이 “다시 통합을 가져오고 미국을 계속 전진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미국 팝스타 스티비 원더, R&B 가수 존 레전드, 인도계 배우인 민디 캘링, SNL로 유명한 영화배우 케넌 톰슨 등이 해리스 부통령 대권행에 힘을 보탰다.
한편 미국 매체들은 이번 전당대회에 미국 슈퍼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욘세의 출연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했으나 결국 공염불에 그쳤다.
스위프트는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혔었고, 비욘세는 해리스 캠프가 자신의 노래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다. 다만 둘 모두 해리스 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