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방황이 길어지고 있다.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경기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야유를 받았고, 홍명보 신임 축구 대표팀 감독은 고전 끝에 겨우 한숨을 돌렸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9월 A매치 기간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2연전에서 1승 1무의 성적을 냈다.
B조 최약체로 꼽혔던 ‘약체’ 팔레스타인과 홈 1차전에서 0-0 충격의 무승부를 거둔 뒤 오만과 원정 2차전에서 고전 끝에 3-1 진땀승을 거뒀다.
원했던 승점 6점은 아니었지만, 승점 4점을 획득하며 나쁘지 않은 출발을 했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 5일 안방인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른 팔레스타인과 첫 경기는 팬들의 야유 속에 진행됐다. 국가대표 서포터스 ‘붉은악마’는 홍명보 감독이 전광판에 비칠 때마다 ‘우~’하는 야유를 쏟아냈다.
또 ‘정몽규 나가’라는 외침과 함께 홍 감독을 비판하는 ‘피노키홍’과 ‘한국 축구의 암흑시대’ 등 걸개도 등장했다.
수비수 김민재(뮌헨)가 경기 후 직접 관중석으로 찾아가 자제해달라고 할 정도로 야유 소리는 컸고, 선수들의 플레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붉은악마는 야유가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것이라고 했지만, 경기에 집중하느라 전광판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선수들 입장에선 야유가 자신들을 향한 것이라 충분히 오해할 만했다.
이후 김민재의 사과로 붉은악마의 야유 사건이 일단락됐다.
교민 위주였던 오만 원정에선 홍명보호를 향한 야유를 찾기 어려웠다.
홈 경기 매진 행렬도 끊겼다. 6만 명에 가까운 5만9018명이 입장했지만, 경기장 곳곳에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국내에서 열린 축구 대표팀의 홈 경기 입장권이 매진되지 않은 건 지난해 10월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튀니지와의 평가전 이후 약 11개월 만이었다.
협회 내부에서도 정몽규 회장을 향한 퇴단의 목소리가 거세다.
지난 12일에는 축구협회 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축구 팬과 언론의 성난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회장의 4선 고지만 맹목적으로 쫓는 정몽규 집행부의 행태는 무지를 넘어 무능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불출마 선언을 하고, 위기의 축구협회를 수습하는데 남은 임기를 보내기를 바란다. 정 회장의 불출마 선언이 한국 축구 위기를 수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임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으로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홍명보 감독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팔레스타인전 무승부 졸전으로 사면초가에 몰렸던 그는 오만전에서 선발 5명을 바꾸는 변화를 시도했고, 1골 2도움 맹활약한 주장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울버햄튼), 주민규(울산)의 득점포를 앞세워 부임 2경기 만에 마수걸이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홍명보호가 갈 길은 멀어 보였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전술과 경기 내용 면에선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팔레스타인전에선 상대가 전체적인 압박 라인을 내린 상태에도 수비형 미드필더를 센터백 사이로 내린 이른바 ‘라볼비아나’ 전술을 고집해 중원에서 볼 소유권을 잃었다.
상대 골키퍼 선방과 손흥민의 슈팅이 골대를 때리는 등 불운도 있었지만, 공격적으로 세부적인 전술도 아쉬움이 많았다.
오만전에선 팔레스타인전 안 됐던 걸 수정하기 위해 가운데 숫자를 보강했고, 이른 시간 황희찬의 선제골로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상대가 라인을 올렸을 때 그에 맞는 전술 대처가 원활하지 못했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상대에 따른 전술 대응이 전체적으로 늦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전술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당장의 승리가 급해 부임 당시 홍 감독이 외쳤던 ‘세대교체’도 이번 2연전에선 찾기 어려웠다. 오른쪽 풀백으로 가능성을 보인 황문기(강원)가 유일했다.
내년 1월 토트넘 입단을 앞둔 신예 공격수 양민혁은 팔레스타인전은 명단에서 제외됐고, 오만전은 교체 명단에 올랐으나 뛰지 못했다.
박 위원은 “지금도 대표팀 평균 연령이 높다. 양민혁을 비롯해 배준호(스토크시티), 이영준(그라스호퍼) 등 젊은 선수들을 긴 호흡으로 중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