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 단속 시위 진압을 명분으로 주방위군과 해병대를 LA 도심에 투입하면서, 1992년 로드니 킹 폭동 당시의 기억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시위는 양상부터 뚜렷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인종 간 충돌은 없었다.
이번 시위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급습과 강제 추방에 반대하며 시작됐다. 불법 체류자 추방에 대한 분노와 불안이 도심을 중심으로 분출됐지만, 이번 시위에서는 흑인, 라틴계, 아시아계, 백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종의 시민들이 함께 목소리를 냈다. 단일 인종 집단의 분노나 표적화는 없었다.
LA 시 중심부 약 5블록 구간에서 진행된 시위는 대체로 평화로웠고, 일부 차량 방화와 상점 약탈, 경찰과의 충돌이 있었지만, 주택 화재나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경찰은 600발이 넘는 고무탄과 비살상 무기를 사용해 진압에 나섰고, 최소 50명이 체포됐다. 체포 사유는 경찰 불복종, 폭력, 몰로토프 칵테일 투척 등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정부 권한을 내세워 병력 동원을 강행했다. 그는 “정부 권위에 대한 반란 또는 반란의 위험”이 있다며 주방위군 4,100명과 해병대 700명을 투입했다. 이에 대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캐런 배스 LA 시장은 강하게 반발했으며, 롭 본타 주 법무장관은 연방 정부의 권한 남용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992년 로드니 킹 사건 당시에는 흑인 사회의 분노가 한인 상점가로 향하며 인종 간 갈등이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일부 흑인 주민들은 상점을 운영하던 한인 상인들을 차별적이고 냉대하는 존재로 느꼈고, 갈등은 폭력으로 이어졌다. 이에 맞서 한인 상인들은 직접 무장을 하고 상점을 방어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서는 그런 장면이 없었다. 일부 한인 상가의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인이나 한인 상가를 타겟으로 한 공격이 아니었다. 인종 간의 반목이나 특정 민족 상점에 대한 표적화가 없었다. 이는 LA라는 도시가 지난 30년 동안 다인종 간 공존과 연대의 문화를 다져온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즉, 시위의 규모와 격렬함에서는 과거와 닮은 장면도 있지만, 이번에는 명확히 ‘인종 대결’이 빠진 풍경이다. LA는 지금,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지 않고 있다.
<김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