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한국에서 태어나 7세 때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입국한 박씨는 LA에서 성장하다 20살에 미 육군에 입대했고, 1989년 파나마 침공 작전(Operation Just Cause)에 투입됐다. 전투 도중 그는 등에 두 발의 총상을 입었고,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 기적처럼 구조됐다. 이 공로로 퍼플 하트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전역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 받던 그는 마약에 의존하게 됐고, 2000년대 중반 마약 소지와 보석조건 위반으로 체포됐다.
이 범죄 전력으로 인해 그는 시민권 취득 자격을 상실했다. 미군 복무자에게 주어지는 신속귀화 혜택도 그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그가 복무한 파나마 작전은 ‘전쟁 상태(wartime)’로 분류되지 않았고, 그는 1년 미만 복무 후 명예 전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47년 미국 생활은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6월 초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그에게 “자진 출국하지 않으면 구금 후 추방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박씨는 NPR에 “내가 싸운 나라가 이런 식으로 날 대하는 게 믿기지 않는다. 총을 맞고도 후회하지 않았는데, 이건 너무 잔인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24일 아침 하와이 호놀룰루 국제공항에서 85세 노모, 자녀, 이모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하와이 KABC 방송에 따르면, 박 씨의 노모는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었고, 작별 인사를 나누는 가족들의 표정은 눈물과 침묵으로 가득했다.
그는 “어머니를 다시 못 보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오열했다. “딸의 결혼식에도, 어머니 장례식에도 나는 없을 겁니다.”
박 씨는 출국 전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골프를 치고, 하와이의 갈릭 쉬림프를 맛보며 고별의 시간을 가졌다.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박 씨는 다시 한 번 NPR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여전히 미군에 복무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인생의 일부고, 나를 만든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끝은 너무나 아프다”고 말했다.
NPR은 박씨의 사례가 수많은 비시민권 참전용사들이 미국 내에서 겪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총상을 입고 훈장까지 받은 병사조차,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로 추방 당하는 이민 시스템의 냉혹한 단면이다.
<김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