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에서 19세기 런던을 피로 물들인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를 소재로 한, 이른바 살인 관광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수익성이 높은 효도 관광 상품이지만, 일각에서는 범죄를 오락으로 소비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1일(현지시각) 미국 CNN에 따르면 영국 런던 동부 이스트엔드 일대에서 운영되는 ‘잭 더 리퍼 투어’에는 매일 밤 수백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들은 오후 8시부터 약 90분 동안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살인 사건 해설을 듣는 등 관광에 참여한다.
잭 더 리퍼는 19세기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 지역에서 활동한 연쇄살인마로, 수술 등에 사용되는 메스를 이용해 해당 지역 여성을 최소 5명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해당 투어를 진행하는 가이드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현지의 한 가이드는 “투어 현장에서 두 가이드가 자리를 놓고 주먹다짐하는 것을 본 적 있다”라고 매체에 전했다.
가이드는 유명 살인 사건 현장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자극적인 해설을 위해 살인 방법을 상세히 묘사하고, 피해 여성을 희화화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 가이드는 범죄 현장의 실제 영상을 벽에 투사하거나 피해 여성의 시신 사진을 보여주고, 영화 ‘사이코’의 배경 음악을 틀어서 관광객들의 긴장감을 유도하기도 한다. 커다란 칼을 들고 관광객을 놀래게 하는 가이드도 등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투어의 흥행으로 인해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서는 아예 살인자의 이름을 딴 상점들이 즐비해졌다. 한 이발소는 ‘잭 더 클리퍼(Jack the Clipper)’라는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다. 이 외에도 패스트푸드점 ‘잭 더 치퍼(Jack the Chipper)’, 패션 매장 ‘잭스 플레이스(Jack’s Place)’, 감자 요리 가게 ‘재킷 더 리퍼(Jacket the Ripper)’ 등이 있다.
매일 밤 살인 투어가 진행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지역 주민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한 지역 주민은 “이곳 주민들은 살인 투어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어떤 날이든 저녁만 되면 수백 명의 사람들이 투어를 다니고 있다. 엄청난 모욕”이라며 “이웃들은 아이를 낳자마자 이사한다. 매일 집 창문 앞에서 가이드가 ‘이곳에서 배꼽까지 배를 갈랐다’라고 설명한다.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하더라”라고 밝혔다.
2015년 개관한 ‘잭 더 리퍼 박물관(Jack the Ripper Museum)’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박물관은 10년 동안 ‘잭 더 리퍼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박물관 내 기념품점에서는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의 실루엣이 그려진 티셔츠 등이 판매되고 있다.
영국 센트럴 랭커셔 대학교 다크 투어리즘(비극적 장소 탐방) 연구소 필립 스톤 소장은 CNN에 “잭 더 리퍼는 분명히 그의 잔혹한 살인과 악명 때문에 기억됐지만, 동시에 매우 낭만적으로 그려지기도 했다”라며 “잭 더 리퍼는 일종의 허구적 인물로 변모했다. 그는 낭만화됐고, 대중문화에 녹아들었으며, 이 때문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