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방북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바티칸 교황궁에서 10시30분부터 50분까지 20분 동안 배석자 없이 교황과 단독 면담을 갖고 “교황님께서 기회가 되어 북한을 방문해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에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평화를 위해 나는 기꺼이 가겠다”면서 “여러분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형제이지 않느냐, 기꺼이 가겠다”고 화답했다.
또 “북한과의 대화 노력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로마 현지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전했다.
이어 교황은 “북한에서 초청장이 오면 평화를 위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기꺼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3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고, 교황은 매우 친근한 화법으로 “언제든지 다시 오십시오(ritorna)”라고 화답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방문 때 파롤린 국무원장님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해 주시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 노력을 축복해 주셨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고, “한국 천주교회가 민주화에 큰 공헌을 했고, 코로나19 방역에 적극 협조했으며, 기후 대응과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천주교계가 한국 사회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게 평가한다”며 “나는 한국인들을 늘 내 마음속에 담고 다닌다. 한국인들에 특별한 인사를 전해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님이라는 큰 선물을 한국에서 주셔서 감사하다”며 “코로나 격리로 인해 만남을 함께하지는 못했는데, 대통령께 애정을 담은 인사를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과의 면담 과정에서 “다음에 꼭 한반도에서 뵙게 되기를 바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화해와 평화의 상징인 교황이 방북 요청에 화답함으로써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에 동력을 얻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의 초청’이 전제 조건으로 걸려 있고, 코로나19 이후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 만큼 북한에서 초청 의사를 전해 실제 방북으로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10월 교황과의 첫 번째 면담에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교황 평양 초청 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당시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라고 화답하고, 이탈리아어로 ‘나는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로 “소노 디스포니빌레(sono disponibile)”라며 사실상 방북 초청을 수락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초청은 이뤄지지 않았고, 면담 5개월 뒤인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결렬되면서 교황 방북 추진 논의도 자연스레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 밖에도 이날 면담에서 문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19, 기후변화 등 인류가 당면한 글로벌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또 문 대통령은 면담 뒤 교황에게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을 녹여 만든 ‘평화의 십자가’를 선물하며, 한반도 평화 의지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에게 선물의 의미에 대해 “성서에도 창을 녹여서 보습(농기구에 끼우는 넓적한 삽 모양의 쇳조각)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이에 더해 한반도 평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김정숙 여사 또한 면담을 마친 교황에게 “이렇게 또다시 함께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다”며 “너무너무 가슴이 뛴다”고 전하고 문 대통령과 함께 선물을 전달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 면담에 이어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과 면담을 가졌다.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은 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교황청은 북한 주민의 어려움에 대해 언제든 인도적 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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