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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타임스케치] 식탁에 앉을 것인가, 메뉴가 될 것인가

2026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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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칼럼니스트

기원전 6세기, 이솝이 남긴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자와 여우, 당나귀가 함께 사냥을 나갔다. 먹잇감을 잡은 후 분배할 시간이 됐다. 당나귀가 순진하게 말했다. ‘공평하게 셋으로 나눕시다.’ 그러자 사자가 당나귀를 단숨에 잡아먹었다. 그리고는 여우에게 물었다. ‘네가 나눠보거라.’ 여우는 재빨리 거의 모든 것을 사자 앞으로 내밀었다. 당나귀는 분배라는 식탁에 앉았지만, 그곳에서 제 몫을 챙길 발언권을 가질 힘이 없었고 결국 메뉴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1500년이 흐른 16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 그곳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강자들이 싸울 때 중립을 지키려는 자는 승자에게는 먹잇감이 되고 패자에게서는 경멸을 받는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는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세력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작은 도시국가들은 이 세력 다툼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들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영토를 분할 당할 것인가. 어느 것도 아닌채 방관하는 것은 안전이 아니라 고립이 되었고 고립은 곧 정복당하는 운명을 의미했다.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운명은 우리 행동의 절반을 지배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이는 식탁에 앉으려는 의지가 바로 자신들 손에 쥐어진 나머지 절반이란 애기다.

1993년, 중동 문제를 다루는 학술지에 짧지만 강렬한 제목이 등장했다. ‘Lebanon: At the Table or On the Menu?’ (레바논: 식탁에 앉을 것인가, 메뉴에 오를 것인가?) 레바논은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다. 시리아,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그들이 레바논의 미래를 논하는 식탁은 있었지만, 정작 레바논 자신은 그 자리에 제대로 앉지도 못했다. 즉, 자신의 운명을 논하는 회의에서 레바논은 주인공이 아니라 안건일 뿐이었던 거다.

이 표현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노동운동가, 여성운동가, 시민권 운동가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우리가 식탁에 앉지 못하면, 우리는 메뉴에 오른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자들의 절규이자, 참여를 향한 선언이었다.

지난 20일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다보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 사이에 끼어있는 중견국들의 운명을 논하는 자리에서 캐나다 총리 마크 카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중견국들은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식탁에 앉지 못하면, 메뉴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 일갈은 2500년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실이 21세기 국제정치의 언어로 다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 오래된 지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중립은 안전이 아니라는 것. 당나귀는 공평함을 믿었고, 레바논은 중립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힘의 균형이 작동하는 세계에서 방관은 선택이 아니라 포기였던 거다.

둘째, 참여는 권리가 아니라 투쟁이라는 것. 여우는 살아남았다. 사자의 힘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몫을 확보하는 지혜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나머지 절반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셋째, 연대는 생존 전략이다. 카니가 강조한 것은 중견국들의 협력이었다. 혼자서는 식탁에 앉을 힘이 부족해도 함께라면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일 게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방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는가, 아니면 테이블에 앉아 목소리를 내는가? 물론 모든 식탁에 앉을 필요는 없을 거다.

때로는 물러서는 지혜도 필요하다. 하지만 내 운명이, 내 미래가 결정되는 그 자리만큼은 비워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2500년 전 이솝이, 500년 전 마키아벨리가, 그리고 오늘 카니가 말했듯이, ‘식탁에 앉지 못하면, 우리는 메뉴판에 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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