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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달린 도깨비는 일본의 문화 침략”

"도깨비,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대상" 장수·재물 기원하던 장난기 많은 신

2026년 07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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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허련 ‘채씨효행도’의 ‘귀화전도’ 부분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비바람을 만나 갈 수 없게 되자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갑자기 나타난 ‘도깨비불’의 인도에 따라 길을 걸어 제사를 무사히 지낼 수 있게 됐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 소치 허련의 작품 ‘채씨효행도’ 속 ‘귀화전도’에 담긴 이야기다. 평강 채씨 채홍념의 손자와 증손자가 1892년 제작한 화첩 속 악천후로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러 가지 못하게 된 채홍념을 도깨비가 돕는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깨비 그림으로 평가받는 이 도깨비는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 머리에 뿔이 없고, 호랑이 무늬 옷도 입지 않았으며, 징이 박힌 방망이를 들고 있지도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에 등장하는 ‘두두리’ 역시 도깨비의 옛 모습으로 여겨진다. 나무 방망이를 닮은 형상으로 마을을 지켜주는 신적인 존재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은 ‘뿔 달린 도깨비’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日 교과서가 만든 ‘뿔 달린 도깨비’
도깨비 연구자인 김종대 전 중앙대 교수는 그 시작을 일제강점기 교과서에서 찾는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조선어독본’을 제작하면서 일본 ‘심상소학독본’을 일부 차용했다. 일본과 조선의 뿌리가 같다는 식민사관을 퍼뜨리는 과정에서 ‘도깨비방망이 얻기’와 비슷한 구조의 ‘혹부리영감’ 이야기에 일본 요괴 오니의 삽화를 함께 실었다. 1915년판에는 도깨비 삽화가 없었지만 1923년판부터는 뿔 달린 오니의 모습이 등장한다.

김 교수는 “도깨비 형상에 대한 오해가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며 “기억이 오래 남는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에 오니의 모습을 실은 것은 일본이 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문화침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국립민속박물관 재직 시절 일본 규슈대 연구자로부터 “80년이 넘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라고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연스럽게 전파된 문화가 아니라 교과서를 통해 오해가 생긴 것인데 어떻게 한국 문화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했다고 전했다.

1933년 교과서에 실린 ‘혹부리영감’ 삽화 (사진=인문360 누리집 갈무리, ⓒ김종대)

귀신이 아닌, 사람 곁을 맴돌던 존재
실제 우리 설화 속 도깨비는 일본 오니와는 성격부터 다르다.

‘석보상절’에는 “도깨비를 청하여 복을 빌고 목숨을 길게 하고자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부터 ‘돗가비’, ‘허주’, ‘독각귀’, ‘도채비’, ‘깨비대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도깨비는 장수와 재물을 기원하는 상상의 존재였다.

세월이 흐르며 ‘귀(鬼)’의 속성이 더해졌지만, 사람을 해치는 귀신이라기보다 사람과 어울리려 하는 존재에 가까웠다. 짓궂은 장난을 치고, 함께 씨름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춤과 노래를 즐겼다. 여성을 좋아하는 모습에는 당시 사람들이 꿈꾸던 남성상이 투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무엇보다 도깨비는 정해진 형상이 없다. 사람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오래된 빗자루나 부지깽이 같은 생활 도구에 깃들기도 하며, 소리나 자연현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도깨비는 사람과 자연, 신앙이 만들어낸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다.

김 교수가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농어촌에서 소학교를 다니지 않은 노인들을 조사했을 때도 “장승같이 큰 놈”, “상머슴 같은 놈”, “패랭이를 쓴 놈” 등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석보상절’에서 ‘돗가비’가 등장하는 부분 (사진=인문360 누리집 갈무리, ⓒ김종대)

“무섭다”던 아이들도 이젠 “친구 같다”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이 최근 상설전 ‘내 친구 도깨비’를 새롭게 선보인 것도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지난해 어린이와 가족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도깨비를 일본 오니의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 6~9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70%가 도깨비를 무서운 존재라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전래 설화를 들려주자 반응은 달라졌다. 아이들은 “재미있다”, “친구 같다”, “같이 놀고 싶다”고 답하며 도깨비를 친근한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전시를 기획한 구민경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아이들은 여섯 살 이전 휴대전화 앱 등을 통해 처음 도깨비를 접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가 ‘말 안 들으면 도깨비에게 전화한다’고 하면 대부분 뿔 달린 오니가 등장한다”며 “일부 교과서와 창작동요에서도 오니의 모습이 도깨비로 표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전국 각지의 도깨비 설화를 ▲도깨비에게 홀리는 이야기 ▲도깨비의 정체에 관한 이야기 ▲도깨비불에 관한 이야기 ▲도깨비와 겨루기 ▲도깨비 덕에 부자 된 이야기 ▲장난을 잘 치는 도깨비 ▲도깨비 방망이 ▲도깨비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도깨비보 이야기 ▲기타 등 총 10종으로 분류했다.

이를 바탕으로 전시에서는 도깨비 이야기를 하나의 모험 이야기로 재구성했고, 어린이들은 도깨비들과 함께 놀고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무서운 존재가 아닌 상상과 우정의 친구인 도깨비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치우천왕, 귀면 등 도깨비로 오해받는 유물도 만나볼 수 있다.

‘도깨비는 어떤 존재일지’ 아이들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전시는 2028년 5월 14일까지.

지난달 29일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상설전 ‘내 친구 도깨비’에서 도깨비방망이를 찾은 ‘또비’의 모습. 2026.07.04. nowon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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