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경기의 긴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홈 클럽하우스는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열렸다. 문이 열리자 들어서는 선수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환했다. 군대 간 자식이 휴가를 나와 집에 들어서는 얼굴이 꼭 그랬다. 원정 성적과 무관하게 분위기는 밝았고, 시즌 막바지답게 끝까지 힘을 내보자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기는 그 표정대로 흘러갔다. 스즈키 감독은 경기 후 투수진이 잘 던졌고, 긴 원정 끝에 모두가 지쳐 있는 상황에서도 타선이 뒤따라와 줬다고 총평했다. 아직 포스트시즌을 다투는 팀을 상대로 완전한 경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똑같이 첫 장면으로 꼽은 것은 1회 중계 플레이였다. 시리와 네토가 정확히 연결했고, 다노가 슬라이딩으로 피하려는 주자를 태그해 아웃으로 잡았다. 데트머는 이를 두고 사실상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의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1회에 상대 기세를 꺾은 것이 컸다는 얘기다.
데트머는 6이닝을 소화하며 홈런 하나로 실점을 막았다. 정작 본인의 평가는 냉정했다. 최고의 구위는 아니었지만 6회까지 끌고 가며 홈런 하나만 내준 데 만족한다고 했다. 구위가 좋지 않은 날 배우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는, 한 시즌 내내 늘 최고일 수는 없으니 그날 가진 것으로 헤쳐 나가며 게임 플랜을 조금씩 바꿔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몸 상태에 대해서는 긴 동부 원정과 늦은 도착에도 경기 전까지는 오히려 좋았다고 했다. 루틴도 평소와 똑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늘 하던 것을 그대로 했고, 지친 기색이 온 것은 5회나 6회쯤이었다고 했다. 스즈키 감독은 90구 부근까지 끌고 간 판단을 언급하며,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데트머가 일관성의 표본이었다고 평가했다.
홈런을 맞은 장면에 대해 데트머는 담담했다. 홈런은 맞게 돼 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좋은 공을 던졌다고 생각하지만 상대가 좋은 타자였고, 올해 성적이 떨어졌더라도 여전히 뛰어난 선수라며 모자를 벗어 인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0탈삼진에 대해서는 솔직했다. 경기 시작 때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닝이 길어지면서 머릿속에 스며들었다고 했다. 한두 개 남았으니 이제는 의식된다고 인정했다. 남은 시즌에 대해서는 한 경기씩만 생각하며 좋게 마무리하고, 그것을 오프시즌으로 가져가 더 나아지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7회에는 서른 살 신인 좌완 블레이크 와이먼이 데트머의 뒤를 받았다.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깔끔하게 지워낸 뒤 크로퍼드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이닝을 매듭짓지 못한 채 내려갔다. 긴 마이너 생활 끝에 서른이 되어서야 빅리그 데뷔를 치른 에인절스 좌완 블레이크 와이먼. 마이너로 내려가던 날 그의 기 죽은 얼굴이 눈에 밟혀 이야기를 더 해 볼 걸 했었는데, 왼손 불펜 투수를 보조하느라 다행이 며칠 지나서 다시 콜업되던 날 덕아웃 계단에서 마주쳐 “웰컴백, 와이먼” 하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뒤를 돌아보며 먼저 손을 내밀어 힘차게 악수를 청했다. 말을 걸어줘서 고맙다는 느낌이었다. 이날도 피칭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잊지 않고 주먹인사를 건넸다. 원정 등판 잘 봤다고 하자 웃으며 고맙다고, 자기도 아주 좋았다고 했다. 내일 클럽하우스에서 또 다시 눈인사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선은 일찍 점수를 냈고 계속 보탰다. 올 시즌 내내 아쉬웠던 대목이다. 데트머는 이날 방망이가 잘 돌았다며 적시타와 상황에 맞는 타격이 좋았다고 했다. 네토는 3루타로 타점을 추가했다. 지금 한 단계 올라선 것 아니냐는 질문에 감독은 일관성이 붙고 있다는 점, 공수 양면에서 몰입도가 보인다는 점을 들며 매일 배우고 나아지는 성숙함을 꼽았다.
추가점은 구즈만에게서 나왔다. 2사 후 결정적인 안타였다. 감독은 올 시즌 내내 아쉬웠던 바로 그 한 방이었다며, 무리하지 않고 가운데로 밀어 친 타격을 칭찬했다.
호세 시리에 대해서도 질문이 나왔다. 감독은 언제 무엇을 할지 모르는 선수라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올 한 해 내내 훌륭한 동료였고 팀에 필요한 활력이 됐다고 했다. 3번 타순에 대해서는 어디에 두든 개의치 않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라며, 재능은 원래 있었지만 지금 즐기면서 뛰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결국 에인절스는 6:4 승리로 마감했다.

남은 경기에 대해 감독은 일관성을 이야기했다. 전날 이기든 지든 다음 날 좋은 태도로 준비하고 나오는 선수들이라 걱정할 게 없다고, 함께한 것이 즐거웠다고 했다.
<석승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