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은 한국인에게 유난히 뜨거운 달이다. 날씨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도 그렇다. 8월 15일 ‘해방’과 29일 ‘경술국치’라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기억이 같은 달 안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 때가 되면 우리는 보통 민족주의나 역사적 당위, 교육적 계몽이라는 익숙한 틀로 8월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틀을 잠시 내려놓고 보면, 해방과 국치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미묘한 균열과 삶의 역설을 비추는 거울로 다가온다.
이런 생각에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이규원의 ‘해방공장’이다. 이 작품은 해방 당일 정오부터 그해 10월 초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부평의 한 군수공장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욕망과 번민을 그린 이야기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조회 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방송, 자리를 비웠다 허둥지둥 돌아오는 일본인 간부들, 그리고 문득 멈춰버리는 기계. 늘 명령을 내리던 공장장의 손목을 조선인 용해공이 붙잡고 말한다. ‘오늘부터 이 공장에서 당신의 명령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대한 억압의 힘이 사라진 순간에 공장 안에는 환희와 동시에 이상한 공백 상태가 찾아온다. 독립의 기쁨은 잠시뿐, 사람들은 곧 ‘공장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두고 저마다의 셈법으로 갈등하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이 공장관리위원회를 꾸리고, 자위대를 조직하고, 도망친 경영진을 끌어내 돈을 받아내는 등의 과정 속에서 친일 행적을 감추려는 이, 순식간에 권력자로 변신하려는 이, 그저 하루치 밥벌이가 아쉬운 이들이 뒤엉켜 번민하는 모습은 거창한 역사적 명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준다. 그리고 소설은 공장 이름을 ‘팔월공장’으로 고쳐 부르는 장면을 끝으로 미완성으로 남겨졌다.
헌데 이 미완성은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얼마후 인천의 많은 공장들은 원료도 자본도 판로도 없이 다시 멈춰 섰다. 노동자들이 손에 쥔 것은 현금 없는 장부와 받을 길 없는 채권 목록뿐이었다.
자치가 선언되었지만 오래 이어지지 못했던 건 ‘해방공장’의 노동자들에게 해방은 승리이기 이전에 당장 내일 멈춰버릴지도 모를 방적기에 대한 불안이었다. 국치라는 어둠속에서도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밭을 갈아야 했으며 해방이라는 환희 속에서도 누군가는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했듯 결국 우리의 삶은 역사라는 거대한 담론보다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공장 사람들은 압제자 일본이 떠나자 마침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자유’를 얻었다고 믿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유 앞에서 곧 새로운 갈등과 혼란에 빠졌던 것이다. 타자에게 빼앗겼던 것(국치)을 다시 빼앗아 오는 것(해방) 그 자체로 진정한 주체성을 곧바로 안겨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게다.
이 질문은 역사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나를 억압하는 어떤 상황으로부터의 벗어나고픈 ‘해방’을 꿈꾸지만, 막상 그 굴레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예상과 다른 자기 자신의 모습. 그러고 보면 진정한 해방은 억압하던 타자가 떠나가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를 스스로 채워 넣을 수 있는 내부의 힘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닐는지.
그러니 어쩌면 해방은 한순간의 선언이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는 미완의 기획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자리도 또 다른 ‘팔월공장’일 수 있겠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기계는 아직 완전히 돌아가지 않는, 명령권은 되찾았지만 삶은 여전히 곤궁한 시간. 해방은 그날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완성해가야 할 미완의 숙제인 것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의 한복판에서, 해방의 환호와 국치의 침묵을 동시에 다시 떠올려본다. 거룩한 애국심의 구호나 상투적인 역사의식의 정답을 잠시 내려놓으면, 그곳에는 뜨거운 햇살 아래 땀 흘리며 그저 하루를 견뎌내던 보통 사람들의 숨소리가 남아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