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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승환의 MLB] ‘레전드’ 앤더슨을 위한 밤 …에인절스, 8-0 대승

소리아노, 시즌 5연승 · ERA 0.28 · 1번부터 9번까지 타선 폭발

2026년 0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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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되기 전 개럿 앤더슨의 추모 전광판 아래에서 몸을 풀고 있는 에인절스 선수들. 석승환

에인절스 스타디움에 밤이 내려앉은 4월 17일, 에인절스 클럽하우스에는 평소와 다른 공기가 흘렀다. 뉴욕 양키스와의 롤러코스터 같던 4연전을 2승 2패로 마무리하고 홈으로 돌아온 선수들이 로커 앞에 서 있었지만, 눈빛은 어딘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엘에이행 비행기 안에서 날아든 부음 하나가 그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2002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 에인절스의 영원한 레전드 개럿 앤더슨이 세상을 떠났다.

경기 전 클럽하우스에서 가장 먼저 인터뷰에 응한 것은 조 아델이었다. 양키스와의 4차전에서 그랜드슬램을 쏘아 올렸던 그는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두가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버텼어요. 그리고 그를 위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델은 앤더슨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으로 한 가지를 꼽았다. 긴 커리어 내내 한결같았던 일관성. “클럽하우스에서 처음 그를 봤을 때부터 생각했습니다. 저런 선수에게서 배워야겠다고. 그는 매일 최고 수준의 야구를 해냈습니다. 그게 정말 대단한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날의 충격이 남긴 교훈을 담담하게 전했다. “야구가 전부가 아니에요. 인생은 훨씬 더 크고, 매일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덕아웃으로 자리를 옮기자 커트 스즈키 감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와이 출신의 이 감독은 선수 시절 상대 팀 포수로서 앤더슨과 맞섰던 기억을 조용히 꺼냈다. “모든 것을 쉽게 해냈어요. 필드에서도, 타석에서도. 쉬운 스윙인데 공이 어디까지 날아가는지 보고 깜짝 놀라곤 했죠.” 스즈키 감독은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 전에 앤더슨에게 연락해 클럽하우스에 와 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우승의 맛을 아는 사람이 팀 주변에 있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추억 하나를 나눴다. “제가 캘스테이트 풀러턴 신입생이던 해였어요. TV로 그 월드시리즈 경기들을 봤습니다. 그 선수가 이제 우리 팀의 역사가 되었고, 우리는 오늘 그와 함께 경기를 뛰었습니다.”

경기 전 덕아웃에서 여러 기자들에 둘러쌓여 인터뷰를 하고 있는 스즈키 에인절스 감독. 석승환

마이크 트라웃은 특유의 짧고 진한 말로 앤더슨을 기렸다. “드래프트를 받던 날부터, 그는 바로 그 사람이었어요.” 트라웃은 앤더슨과 구장 밖에서도 어울렸고, 그가 자신의 보트를 쓰게 해줬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침묵했지만 그라운드 밖에서는 환하게 웃던 사람, 자신 역시 그런 리더십을 닮고 싶다고 했다. “그에 대해 나쁜 말을 한 사람을 단 한 명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뉴욕 원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갔다. “4연전이 롤러코스터였지만, 우리는 서로를 믿고 버텼습니다. 1번부터 9번까지 모두가 팀을 위한 타석을 가져갔어요. 그게 지금 이 팀의 힘입니다.”

경기 전 덕아웃에서 이어지는 마이크 트라웃 선수의 인터뷰. 석승환

가장 오랜 기억을 가진 사람은 역시 팀 새먼이었다. 새먼은 처음부터 끝까지 야구 선수 앤더슨이 아닌 인간 앤더슨을 이야기했다. “모두가 그의 야구를 이야기하지만, 저는 그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게 그의 가장 큰 유산이에요.” 두 사람은 10년을 함께 뛰었고, 가족들도 가까웠으며, 아내들이 같은 시기에 임신했고, 아이들도 함께 자랐다. “그는 나의 책임감이었고, 나는 그의 책임감이었어요.” 새먼은 첫 만남의 기억도 생생하게 꺼냈다. 1990년 인스트럭셔널 리그, 멋진 무스탕을 몰고 나타난 키 크고 말랐던 청년. “저 녀석이 어떤 태도일까 했는데, 완전히 정반대였어요. 그 미소가 팀 전체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마지막에 새먼은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주 45분간의 긴 통화를 떠올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통화가 마지막 작별 인사였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싶어요.”

인터뷰 하는 도중 말문을 잇지 못하는 팀 새먼. 석승환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에인절스는 레전드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그를 기렸다 — 야구로. 선발 호세 소리아노는 이날도 경이로운 투구를 이어갔다. 6회 2아웃까지 99개의 공을 던지며 단 한 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2안타, 4볼넷, 8탈삼진. 5이닝 2/3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ERA를 0.28로 낮췄다. 시즌 시작부터 5연승, 에인절스 투수 중 2011년 이후 시즌 초반 5연승은 처음이다. 스즈키 감독이 경기 후 말했다. “최고의 구위가 아니었는데도 어떻게 피칭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었어요. 그게 바로 성숙함입니다.” 소리아노 본인도 담담했다. “커맨드가 조금 흔들렸지만, 가장 중요한 건 팀이 이겼다는 겁니다. 포수와 완전히 같은 페이지에 있어요.” 그는 올해 달라진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스트라이드가 안정됐고, 커맨드가 좋아졌어요. 더 깊이 경기를 끌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작년 일은 잊고, 지금 하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타선도 그에 화답했다. 에인절스는 이날 샌디에고를 상대로 13안타 8득점, 완봉승을 거뒀다. 2회 3점, 4회 3점, 5회 2점. 조쉬 로우와 요안 몬카다가 홈런을 보탰고, 샤누엘이 3안타로 맹활약했다. 조 아델은 4회 결정적인 2타점 2루타를 때려내며 가슴을 치는 주먹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경기 후 그는 말했다. “오늘은 GA를 위해 모두가 불타올랐어요. 그를 위해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날 조 아델이 DH로 출전한 것은 스즈키 감독과 상의한 결과였다. 최근 출루와 주루가 많아 몸을 쉬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9회 뉴욕 원정에서 블로운 세이브(Blown Save)를 기록했던 마무리 조던 로마노가 등판해 1이닝 3탈삼진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스즈키 감독은 로마노에 대해 “가능한 한 빨리 다시 마운드에 올리고 싶었어요. 좋은 등판이었습니다”라고 했다.

경기가 끝난 후 에인절스 스타디움의 전광판에는 개럿 앤더슨의 얼굴이 떠올랐다. 관중석 곳곳에서 박수가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경기장 내부 복도와 엘리베이터, 덕아웃 근처에서 앤더슨을 여러 번 마주쳤다. 말수는 적었지만 눈빛이 따뜻했다. 오늘 밤 에인절스는 그라운드 위에서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작별을 고했다.

가렛 앤더슨 추모 전광판: 경기가 끝난 후 모두가 퇴장한 후에도 여전히 환하게 밝히고 있는 개럿 앤더슨 추모 전광판과 그라운드에 새겨진 이니셜 GA가 선명하게 보인다. 석승환

▶ 최종 스코어

에인절스 8 — 샌디에고 0

승리투수: 호세 소리아노 (5승 0패, ERA 0.28) | 패전투수: 맷 월드론

에인절스 시즌 성적: 11승 10패

<석승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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