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6일 경북의 한 2층짜리 건물 옥탑방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던 60대 기사 A씨가 1.4m 높이의 사다리에서 쓰러졌다.
현장에 있었던 설치 기사의 아내가 구급차를 부르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결국 응급실에서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사인은 뇌진탕이 아닌 심근경색에 의한 심정지였다.
A씨의 유족은 3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갑자기 사망하게 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심정지의 원인이 옥탑방에 있던 리얼돌 때문일 수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에어컨 설치 장소 옆에 놓인 침대에 전신형 리얼돌이 눕혀 있었다. 사건 당일 설치 작업을 도왔던 A씨의 아내는 방안에 있던 리얼돌을 보고 깜짝 놀라 “무서워서 못 하겠다. 그냥 돌아가자”고 말했다.
침대에 눈을 뜨고 가지런히 누워 있는 모습이 마치 여성의 시체를 떠올리게 해 무서움이 들었다는 것이다.
남편도 리얼돌을 침대에 눕혀놓은 모양새에 섬뜩한 생각이 들었지만 “빨리 설치하고 나가자”고 생각하고 작업을 서둘렀다.
기사는 에어컨 설치 30년 차 베테랑이었고, 술·담배를 하지 않으며, 지병과 가족력이 없는 건강한 몸이었다고 유족 측은 전했다.
유족 측은 “리얼돌이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불로 덮어 놓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놓을 수도 있었다”며 “설치 기사가 올 줄 알았는데 왜 치우지 않았느냐”라며 A씨가 리얼돌에 놀라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제보자가 보내온 사고 현장의 리얼돌 사진을 보면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무표정한 모습에 입주변에는 피처럼 보이는 빨간색 액체까지 묻어있었다.
이 옥탑방에는 왜 리얼돌이 있었던 것일까.
리얼돌의 주인은 당시 옥탑방에 살고 있던 지체장애인 B씨였다. 지체장애인 3급 판정을 받은 B씨는 부모가 없고 형제 1명뿐이었고 건물주와 해당 건물에 입점한 노래방 사장의 배려로 옥탑방에서 지냈다.
리얼돌은 B씨의 친인척이 B씨의 정서 안정을 위해 마련해 준 것으로 파악됐다. 지체장애인 3급은 정신연령 8~12세에 해당해 또래 이성과 교제하기 힘들고, 따라서 성욕 해소를 위해 리얼돌과 같은 용품이 필요했다는 것이 B씨 지인의 주장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B씨는 종종 노래방 일손을 도우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에어컨은 한동네에 살던 주민의 호의로 설치하려던 것이었고 A씨는 주문을 받고 현장에 출동한 설치 기사였다.
A씨의 황망한 죽음에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유족 측 주장대로 ‘리얼돌’로 인한 특수상해죄에 해당하는지 살펴봤다.
특수상해죄에 따르면 사람을 놀라게 해 상해를 입힌 경우 고의성을 판별해 처벌 여부를 따질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의 경우 경찰 조사 과정에서 고의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불법 반입 여부도 위법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
경찰은 A씨의 사인인 심정지와 리얼돌간의 인과관계를 발견해내지 못했다. 사고 당시 최초 목격자도 문밖에 있었던 B씨였다. B씨에 따르면 A씨는 사다리 위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리얼돌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쓰러진 것이 아니라 작업 도중 갑자기 쓰러진 것으로 경찰은 파악한 것이다.
관세청의 리얼돌 수입 통관이 허용된 것은 지난해 12월 26일로, 사고 당시에는 리얼돌 수입업자가 세관을 상대로 통관 보류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던 때다. 통관을 거쳐 수입을 했든지, 국내서 제작한 것이었든지 관련 법규가 마련되지 않아 위법성 여부를 따질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리얼돌 수입은 관세청의 권한으로, 단순히 리얼돌을 소지하고 있다고 해서 처벌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은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B씨를 소환해 지난 2월까지 조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은 “범죄로 보일만한 정황은 없었다. 부검 결과를 종합해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했다”고 밝혔다.
사건 이후 옥탑방은 폐쇄됐고 B씨는 인근으로 거처를 옮겼다.
불의의 사고를 목격하고 경찰조사를 받은 B씨는 최근까지 정신적 고통을 앓고 있다. 에어컨을 무상 제공한 주민 C씨는 “사고 이후 B씨가 아주 불안해했다. 최근에도 ‘귀신이 보인다. 무섭다’고 전화가 와서 위로해 줬다”고 말했다.
A씨 유족 측은 “민사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바라지는 않는다”며 “경찰들은 끔찍한 장면을 많이 봐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일반 사람들이 리얼돌을 보면 놀라서 몸에 갑작스런 이상이 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산업재해 보상도 받지 못하는 황망한 A씨의 죽음에 이웃 주민들도 “B씨를 돕기 위해 서로 배려하며 지내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며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