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 재즈’의 선구자로 통한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칼라 블레이(칼라 보그)가 별세했다. 향년 87.
18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블레이는 전날 뉴욕 주(州) 윌로에 위치한 자택에서 뇌종양으로 인한 합병증(complications of brain cancer)으로 숨을 거뒀다.
어릴 때 교회에서 합창을 지휘한 부친으로부터 음악 교육을 받은 블레이는 이후 독학으로 음악을 익혔다.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인 첫 번째 남편 폴 블레이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했다.
깡마른 체격에 사자의 갈기를 연상케 하는 펑크 머리 혹은 뱅 스타일의 머리 모습이 인상적인 블레이는 등장 역시 강렬했다.
1960년대 그녀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엔 여성 재즈 뮤지션들은 주로 보컬리스트로 각인됐다. 그런데 블레이는 재즈 신에서 피아노 연주 외에 작곡가, 프로듀서, 밴드 마스터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특출난 행보를 보여줬다.
특히 기존에 있던 걸 따르지 않고 실험적이면서 전위적인 연주, 작곡법을 보여줬다. 프리 재즈 신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미국 태생의 시인 겸 재즈 작사가 폴 헤인즈의 가사를 바탕으로 쓴 재즈 록 오페라 앨범 ‘에스컬레이터 오버 더 힐(Escalator Over the Hill)’이 그 증거다.
블레이가 1971년부터 3년 동안 쓴 이 작품은 연극 음악, 프리 재즈, 록, 인도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됐다. 웅장하면서 역동적인 빅 밴드 풍의 넘버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미국 가수 린다 론스태드, 영국 슈퍼 하드록 밴드 ‘크림(Cream)’의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 등이 참여했고 시대의 ‘반항적인 정신’을 포착했다는 평을 들었다. 어두운 풍의 앙상블, 튜바의 독주 악기로 사용 등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구간이 수두룩했다.
1972년 조성된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는 등 점차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블레이는 독일의 세계적인 음악 레이블 ECM에서 꾸준히 음반을 냈다. 자신의 레이블 ‘와트(Watt)’를 ECM 산하로 설립하기도 했다.
미국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 영국 색소포니스트 앤디 셰퍼드는 블레이의 오랜 음악적 동료들이다. 이들 셋은 오랜 기간 트리오로 전 세계를 돌며 공연했다. 내한공연도 했다. 2002년 LG아트센터, 2018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한국내 뮤지션들 중에서도 블레이 팬들이 많다. 싱어송라이터 이적은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DJ를 맡았을 당시 블레이의 명반으로 통하는 ‘섹스텟(Sextet)'(1987) 수록곡 ‘론스(Lawns)’를 클로징 시그널로 사용했다. 이적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 곡에 대해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