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내년 금리 인하 속도 조절 시사는 원·달러를 그대로 15년 전 금융위기 수준인 1450원대로 밀어올렸다. 저성장 우려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과 탄핵 사태 등에 따른 원화값 약세에 기름을 부으면서다.
심리적 환율 저항선이 무너지면서 시장의 관심사는 환율 고점에 모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달러의 추가 강세와 국내 경제 펀더멘탈 우려에 한국은행의 내년 1월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가 더해질 경우 원·달러가 1500원대로 치달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는 전일 오후 종가(1435.5원)보다 16.4원 오른 1451.9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 기준으로 환율 1450원 돌파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3월16일(1488.0원) 이후 처음으로 장중 최고가는 1453.0원이다.
최근 환율 급등은 국내 정치·경제 불안에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지연 가능성에 따른 달러 강세가 방아쇠가 됐다. 지난 17~18일(현지시각) 연준은 12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위원회)를 통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춰 3회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문제는 점도표다. 지난 9월 내년 인하 횟수로 4차례를 예상됐던 점도표에 달리 이번에는 2차례만 내릴 것으로 전망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앞으로 금리 인하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지수는 108선으로 급등했다.
이미 국내 정치 불안은 원화값을 짓누르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이어지면서 달러를 매수하고, 원화를 매도하는 투자자가 늘었다. 증시에서의 외국인 이탈도 원화값을 떨어뜨리고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이달 초부터 빠져나간 금액은 1조원이 넘는다.
저성장 우려도 원화값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1월 한은은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로 각각 2.2%와 1.9%를 예상했다. 하지만 최근 탄핵 사태에 따른 소비 위축 우려에 지난 18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설명회에서 올해 성장률이 2.1%로 떨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그럼에도 재정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한은의 1월 금리 인하 기대는 높아졌다. 한은의 추가 금리 인하는 12월 연준의 금리 인하에 따라 좁혀진 1.5%포인트 금리차를 확대시키고, 경기 부진 시그널로 읽혀 외국인의 이탈로 이어지며 환율을 자극할 수 있다.
여기에 미국와 달리 주요국들이 통화정책을 완화시키고 있다는 점도 원·달러의 추가 상승을 부채질한다. 유럽중앙은행(ECB)는 최근 3차례 연속 금리를 낮춘 후에도 향후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이에 따른 유로화 약세는 달러 강세를 유발한다.
전문가들은 1500원대 환율 전망을 속속 내놓고 있다. 최근 1500원대 환율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3월10일 종가로 기록한 1511.5원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내년 통화정책 불확실성 심화에 안전자산인 달러로의 자금 유입이 지속될 것”이라면서 “단기적으로 환율 상단을 1500원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기대와 국내 성장률에 대한 우려에 내년 금리 인하 가능성이 겹칠 경우 환율이 1500원대로 치솟을 수 있다”면서 “단계적으로 외환보유액으로 방어에 나서는 한편, 외환스와프 추가 체결 등으로 시장 불안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환율이 치솟자 전날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는 “한 방향으로의 지나친 쏠림 현상은 향후 반대 방향으로 큰 폭의 반작용을 수반한다”면서 적극적인 시장안정화 조치를 시사했다. 외환당국은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 한도를 650억 달러로 증액 조치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