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타임스가 캘리포니아를 떠나려는 부자들과 관련해 특집 기사를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대거 마이애미에 모였다. 부유층의 연말 사교 일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려한 현대 미술 박람회 아트 바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행사 기간 동안 가장 큰 화제가 된 장면 중 하나는 세계 최고 부호 중 한 명인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길이 466피트, 약 4억5천만 달러에 달하는 초호화 요트 ‘드래곤플라이’를 비스케인 만에 정박시킨 뒤 예술 작품을 보러 상륙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장의 대화는 곧 캘리포니아 억만장자 약 12명 사이에서 다른 주제로 옮겨갔다.
몇 주 전 SEIU-유나이티드 헬스케어 워커스 웨스트가 지지하는 새로운 주민투표 법안이 제안됐는데,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 의료 예산 삭감에 대응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억만장자들의 자산에 5%의 일회성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이애미 코코란 그룹의 부동산 중개인 줄리언 존스턴은 캘리포니아의 한 기술 기업 지도자와 나눈 대화를 회상하며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법안이 통과될 수도 있다’며 ‘만약 통과되면 1억 달러에서 3억 달러를 쓰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억에서 3억달러를 세금으로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주비용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신속히 이주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팜비치에서 마이애미까지 이어지는 플로리다 ‘골드 코스트’ 전역에서는 고급 부동산 중개업자들에게 긴급 전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술 기업 최고경영자들과 그들의 측근들이 연말 전에 집을 사서 거주지를 이전하고 자산을 보호하려 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는 억만장자가 약 115명으로 캘리포니아와 뉴욕에 이어 세 번째로 많고, 주 소득세가 없으며 친기업 정책과 온화한 기후를 갖춘 곳이다. 이러한 조건 덕분에 캘리포니아 기술 업계 거물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이주지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에는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비스케인 만에 있는 코코넛 그로브 지역의 워터프런트 저택 두 채를 1억7340만 달러에 구입했다. 두 달 뒤에는 브린이 마이애미의 폐쇄형 섬 지역인 앨리슨 아일랜드에서 약 5천만 달러에 해변 저택 단지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부유세 논의가 지난해 10월 처음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여러 캘리포니아 억만장자들이 주 밖에서 대형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페이팔과 팔란티어 공동 창업자 피터 틸, 벤처 투자자 키스 라부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등이 그 사례다.

더 많은 억만장자들도 같은 선택을 검토하고 있다.
도어대시 공동 창업자 앤디 팡은 소셜미디어 X에서 부유세 법안을 비판하며 “이런 어리석은 부유세 제안 때문에 캘리포니아를 떠날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무책임해 보일 정도”라고 적었다.
지난주에는 메타 회장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챈이 마이애미의 초고급 지역 인디언 크릭에서 2에이커 규모의 저택을 1억7천만 달러에 구입해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부동산 거래 기록을 새로 세웠다. 이 지역은 ‘억만장자 벙커’로 불린다.
기업들의 이동도 이어지고 있다. 웰스파고는 올해 말까지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자산관리 부서를 웨스트 팜비치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 역시 지난달 마이애미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6년 전 본사를 팔로알토에서 덴버로 옮긴 바 있다.
이 같은 대규모 자산 이동은 남부 플로리다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개발이 급증하고 고급 부동산 가격은 세 배 가까이 뛰었으며 보모, 개인 셰프, 고급 골프 클럽 회원권, 사립학교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
반면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러한 실리콘밸리 자산 유출이 기업 혁신과 경제, 인재 유치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 부유세 제안을 “주에 매우 해로운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부유한 주민들을 떠나게 만들 것”이라며 법안 저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주민투표안은 현재 11월 선거에 상정되기 위해 약 87만5천 명의 서명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지지자들은 이 법안이 의료 서비스와 사회 복지 등 필요한 분야에 약 1천억 달러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술 업계 억만장자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 세력도 형성돼 있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와이 콤비네이터의 최고경영자 개리 탄은 X에서 “이 법안은 캘리포니아 기술 스타트업이라는 황금 거위를 죽이고 먹으려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플로리다가 부유층의 피난처가 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세기 철도 사업가이자 스탠더드 오일 거물 헨리 플래글러가 팜비치를 겨울 휴양지로 개발한 이후 이곳은 오랫동안 부자들의 휴양지였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팬데믹 기간 동안 북동부와 중서부 지역의 많은 개인과 가족들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변화가 가속화됐다. 이후 블랙록과 레드버드 캐피털 파트너스 같은 금융 회사들도 팜비치에 사무실을 열며 이 지역은 ‘월스트리트 사우스’라는 별칭을 얻었다.
마이애미 부동산 중개인 브렛 해리스는 “캘리포니아 억만장자들은 부유세를 피해 달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커버그의 인디언 크릭 거래를 중개했다며 “6억 달러가 넘는 계약 세 건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고급 부동산을 찾는 고객들은 프라이버시와 명성을 중시하며 파델 코트, 냉수욕 풀과 사우나를 갖춘 웰니스 스파, 셰프용 주방, 개인 영화관, 골프 시뮬레이터, 다중 차량 차고, 대형 드레스룸 등 최고급 시설을 요구한다고 해리스는 설명했다.
플로리다에서 고급 부동산 거래를 담당하는 변호사 체이스 버거는 최근 ‘은밀한 소유’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부유한 고객들이 구매 사실을 숨기기 위해 플로리다 토지 신탁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는 “예전에는 1년에 몇 건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수십 건으로 늘었다”며 “캘리포니아와의 거주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구매자들은 매물 부족 때문에 보통 시장 가격보다 30~40% 높은 금액을 제시하고 현금으로 지불하는 경우가 많다.
마이애미와 팜비치에서 원하는 집을 찾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른 해안 도시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팜비치 남쪽 약 10마일에 있는 마날라판이다. 면적 2.4제곱마일의 작은 섬 도시로 주민은 약 410명뿐이며 자체 경찰도 갖추고 있다. 일부 주택은 지하 터널을 통해 개인 해변으로 바로 연결된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주민 중 한 명은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이다. 그는 2022년 넷스케이프 공동 창업자 짐 클라크로부터 ‘제미니’라는 해안 저택 단지를 1억7300만 달러에 구입해 당시 플로리다 주택 거래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단지는 15에이커 규모로 6만2000제곱피트의 본관과 버드 아일랜드 일부를 포함한다.
엘리슨은 이후에도 2억7739만 달러를 들여 유명 5성급 호텔인 오 팜비치 리조트 앤 스파를 인수했고, 지난해에는 플로리다 록사해치에 있는 600에이커 규모 사파리 공원을 3천만 달러에 구입했다.
이른바 ‘엘리슨 효과’로 불리는 현상은 마날라판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고 집값도 급등시켰다.

한편 플로리다를 새로운 기술 중심지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마이애미 돌핀스 구단주인 억만장자 스티븐 로스는 웨스트 팜비치를 실리콘밸리에 경쟁하는 비즈니스·교육·기술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약 1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그는 최고급 오피스 빌딩과 호텔을 건설했고 웰스파고 자산관리 부서 유치에도 핵심 역할을 했다. 또 사립학교 설립을 지원하고 공공 교육 시설에도 투자하고 있다.
로스는 밴더빌트 대학교의 금융·기술·공학·AI 중심 대학원 캠퍼스를 웨스트 팜비치에 설립하기 위해 5천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이 캠퍼스는 2029년 개교 예정이다.
또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해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본사를 둔 아처 에비에이션과 협력해 에어택시 이착륙장과 충전 시설 네트워크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로스와 헤지펀드 시타델의 창업자 켄 그리핀은 최근 ‘앰비션 액셀러레이티드’라는 캠페인을 시작해 기업들이 플로리다로 이전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두 사람은 각각 500만 달러씩 기부했다.
이러한 노력은 실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산타클라라 기반 소프트웨어 기업 서비스나우는 웨스트 팜비치에 지역 허브를 열겠다고 발표했고, 양자 컴퓨팅 기업 디웨이브 퀀텀은 본사를 팔로알토에서 보카레이턴으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영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샌디에고 캘리포니아대 정치학 교수 태드 쿠서 교수는 “지난 20~30년 동안 캘리포니아 안팎으로 인구 이동은 경제 사이클에 따라 계속 변동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투자와 첨단 기술 일자리 성장의 중심지”라며 “벤처 자본만 봐도 캘리포니아가 미국 나머지 지역을 합친 것과 맞먹는 투자를 유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세계적 대학, 고학력 인력, 많은 기업과 자연 자원이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플로리다로 이동한 억만장자들 역시 캘리포니아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다.
여러 기술 업계 인사들은 ‘빌딩 어 베터 캘리포니아’라는 단체를 만들어 주택 문제 해결과 부유세 약화를 목표로 한 주민투표 추진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세르게이 브린은 이 단체에 2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피터 틸 역시 자신의 투자회사 틸 캐피털과 파운더스 펀드를 마이애미로 옮긴 뒤 캘리포니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정치 행동 위원회에 300만 달러를 기부하며 부유세 반대 활동을 지원했다.
물론 많은 기술 기업 지도자들은 여전히 캘리포니아에 남아 있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실리콘밸리에 살기로 선택했다”며 “어떤 세금이 부과되든 괜찮다”고 말했다.
박성철 기자(sungparkknews@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