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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승환의 MLB]코메리카의 밤을 수놓은 반전의 사나이들

그리섬의 생애 첫 만루포, 에인절스 디트로이트 원정 1차전 10대 6 완승

2026년 0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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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리카 파크 정문 전경. 입구를 지키는 타이거 조각상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석승환

텍사스와의 홈 3연전을 기분 좋게 스윕하고 디트로이트로 날아온 에인절스. 과연 오늘도 좋은 모습으로 승리를 이끌며 반전의 분위기를 끌고 갈수 있을지?

디트로이트라고 하면 단순히 자동차 도시라는 것과 모타운이 떠오른다. 야구 때문이 아니라 어려서 들었던 그런 이유로 언젠가는 한 번 와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야구를 통해 이 경기장과 함께 이 도시를 방문했다.

먼저 5월 26일부터 28일까지의 미디어 패스를 받고 프레스 박스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긴 비행으로 출출해진 배를 바로 뒤에 위치한 카페테리아에 갔다. 어느 구장을 가거나 미디어 사람들을 위해 운영하는 곳은 아주 저렴하게 식사와 음료를 제공한다. 여기는 12달러에 제공하는데, 코로나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가격이 오른 듯하다. 이전에는 거의 모두 10달러를 넘지 않았다. 12달러짜리 식사 말고도 음료와 핫도그-디트로이트는 핫도그가 유명하다, 쿠키, 아이스크림 등은 무료로 제공해 주기도 한다.

코메리카 파크 카페테리아 12달러 메뉴— 그릴드 치킨, 맥앤치즈, 피타 샌드위치, 석승환

배를 채우고 나서 구장을 한 바퀴 둘러봤다. 코메리카 파크는 2000년 문을 연 오픈에어 구장으로, 디트로이트 다운타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에인절스 스타디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벽돌로 마감된 외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조명탑, 그리고 입구마다 자리 잡은 타이거 조각상들 — 이 구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디트로이트의 색깔을 입고 있다.

경기 전 배팅 프랙티스가 한창인 코메리카 파크. 디트로이트 다운타운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펼쳐진다. 석승환

구장 안쪽 한편에는 타이거스 레전드들의 동상이 늘어서 있다. 그 중 눈에 띈 것은 할 뉴하우저의 역동적인 투구 폼 동상이었다. 타이거스 역사상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으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전설. 그 동상 앞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 이 구장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새겨질까.

코메리카 파크의 레전드 동상 중 하나인 할 뉴하우저. 타이거스의 영광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석승환

에인절스는 초반부터 적극적인 타격으로 점수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이날 특히 눈에 띈 것은 잭 네토의 주루였다. 1루에 있던 네토가 싱글 하나에 홈까지 내달렸다. 빠른 발 하나가 팀 전체에 불을 지피는 순간이었다. 스즈키 감독도 경기 후 이 장면을 특별히 언급했다.

“단순히 득점이 아니었어요. 팀 전체에 ‘열심히 뛰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은 장면이었죠.”

그러나 경기는 그리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타이거스의 반격으로 6대 5로 뒤지면서 8회를 맞이했다.

그리고 8회초, 코메리카 파크의 밤은 완전히 뒤집혔다.

본 그리섬 등번호 5번. 플로리다 올란도 출신의 25세 내야수. 에인절스 팬들에게도 아직 낯선 이름일지 모른다. 스프링캠프부터 팀과 함께했지만 주전이 아니었다. 몬카다와 페라자의 3루 백업, 때론 2루까지 커버하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해왔다. 그러다 놀란 샤누엘이 왼쪽 종아리 부상으로 빠지자 1루까지 맡게 됐다. 세 번째 팀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 어머니 쪽으로 푸에르토리코 혈통을 이어받은 그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가족을 생각하며 타석에 들어섰을 것이다.

에인절스 그리섬이 만루홈런을 터뜨리고 있다. 에인절스 X

만루 상황. 그리섬은 욕심을 버렸다.

“솔직히 홈런을 노린 게 아니었어요. 그냥 2루 방향으로 굴려서 주자 한 명이라도 불러들이려 했죠.”

그런데 공은 담장을 넘어갔다. 라이트센터 방향 만루홈런. 생애 첫 커리어 그랜드슬램. 그는 한동안 공을 눈으로 쫓아야 했다.

“우익수랑 중견수가 쫓아가는 걸 한참 봤어요. 펜스를 넘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정말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스코어는 9대 6. 에인절스 역전.

경기 후 인터뷰룸에서 스즈키 감독은 그리섬의 타구를 이렇게 회고했다.

“옆에서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세게 칠 필요도 없겠는데.’ 정말 컨트롤된 스윙 하나로 그냥 넘겼어요. 라이트센터 방향, 인상적인 타구였습니다.”

경기후, 비지터 클럽하우스에 마련된 인터뷰 월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스즈키 감독. 석승환

한편 8회를 깔끔하게 틀어막은 체이스 실세스에 이어, 9회 마운드에는 커비 예이츠가 올라왔다. 부상회복 후,  에인절스의 마무리 투수로 돌아온. 그런데 예이츠는 오늘 볼이 자꾸 빗나갔다. 프레스박스에서 지켜보던 나도 슬쩍 의문이 들었다 — 과연 이 투수가 마무리로 괜찮은 걸까.

경기 후 스즈키 감독에게 직접 물었다.

“커비가 지금 마무리로 괜찮겠습니까?”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우리 마무리는 커비입니다. 볼이 좋아요. 지금 이닝을 늘려가면서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기회가 오면 그가 문을 닫아줄 겁니다.”

사실 예이츠는 시즌 초 무릎 염증으로 부상자명단에서 시작했다. 스프링캠프에서 마무리 0순위였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이제 막 복귀해 감을 찾아가는 중이다. 베테랑이 제 모습을 되찾을 때, 에인절스 불펜은 한층 더 두꺼워질 것이다.

9회에도 에인절스의 방망이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호세 시리가 나섰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30세 외야수. 지난 시즌 정강이뼈 골절로 사실상 시즌을 통째로 날렸고, 올해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에인절스에 합류했다. 빅리그 콜업을 받은 지 불과 10일 만에 좌익수 수비 교체로 들어선 9회, 시리는 솔로 홈런으로 화답했다. 최종 스코어 10대 6.

오늘 코메리카 파크에서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었다. 욕심 없는 스윙으로 담장을 넘긴 그리섬, 재기의 홈런을 터뜨린 시리 — 화려하지 않아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두 남자가 이 밤의 주인공이었다.

레전드들의 동상이 늘어선 코메리카 파크. 그 구장에서, 이름 없이 뛰던 선수들이 오늘 밤만큼은 빛났다.

에인절스는 내일(5월 27일) 같은 장소에서 타이거스와 디트로이트 원정 2차전을 치른다. 선발은 호세 소리아노.

<석승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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