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탁에 앉으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들 중에 냅킨이 있다. 입을 닦고 흘려진 음식물도 닦아내고 그리고 구겨서 버려지는 것. 하지만 묘하게도 인류의 역사는 이 하찮은 물건 앞에서 운명의 방향을 바꾼적이 많다.
1952년 어느 밤, 버지니아의 인구 400명 마을의 허름한 작은 술집에서 두 남자가 위스키를 기울이며 옥신각신했다. 오래전부터 제머의 농장을 사고 싶어했던 루시가 말을 꺼냈다. ‘5만 달러에 팔아’ 그러자 술이 한창 오른 제머가 웃으며 레스토랑 냅킨에 적었다. ‘농장을 5만 달러에 판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아내까지 서명했다.
다음 날 제머가 전화했다. ‘그거 농담이었어’ 루시는 이미 변호사를 선임한 뒤였다.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제머는 ‘나는 취해 있었고 농담이었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버지니아 대법원은 냉정했다. ‘계약의 의사는 당사자의 마음속이 아니라, 상대방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인 언어와 행동으로 판단한다.’ 제머는 농장을 넘겨야 했다. 오늘날 전 세계 로스쿨에서 계약법 수업에 등장하는 ‘루시와 제머 (Lucy v. Zehmer)’ 판례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많다. 단지 무대만 달랐을뿐 그 구조는 같다. 그 중 축구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2000년, 13살의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바르셀로나로 날아가 ‘라 마시아 유소년 아카데미’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그 소년에게는 두 가지 핸디캡이 있었는데,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과 성장호르몬 결핍증으로 또래들보다 키가 작았다는 것이었다. 그 치료비만 매달 수천불.
해서 FC 바르셀로나 구단 이사회는 고개를 저으며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이 때문에 먼 곳까지 날아와 몇 달째 기다리고 있던 아비지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바르셀로나 기술 감독 레샤흐의 눈은 달랐다.

소년을 본지 5분도 안 되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고 여겼다. 레샤흐는 관련인사 2명과 클럽 레스토랑에서 모였다. 소년의 아버지가 곧 아들을 데리고 돌아가버릴 수도 있었고, 레알 마드리드가 이미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런 상황에 레샤흐는 그 자리에서 끝내야 한다고 결심하고 웨이터에게 메모지를 달라고 했다. 가로세로 16.5Cm짜리 하얀 냅킨이었다. 레샤흐는 망설임 없이 펜을 들어 적어 내려갔다.
‘2000년 12월 14일, 바르셀로나에서. 두 증인이 참석한 가운데, 어떠한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책임 하에 FC 바르셀로나 스포츠 감독 카를레스 레샤흐는 이 소년을 선수로 계약할 것을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서명 세 개. 냅킨 하나. 그날 밤 구단 회장이 공식 계약서에 서명했다. 리오넬 메시(Lionel Messi)는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 냅킨은 2024년 런던 경매장에서 97만불에 팔렸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냅킨이 된거다.
그로부터 26년이 흘렀다. 그 냅킨의 소년은 지난 22일 텍사스의 밤하늘 아래 서 있었다. AT&T 스타디움의 조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메시가 페널티 킥을 찼다. 그러나 공은 골키퍼의 품으로 빨려 들어갔다. 실축. 숨을 죽였던 관중 3,9000 명의 탄식이 경기장을 덮었다.
다른 선수였다면 고개를 숙였을 것이지만 메시는 고개를 들었다. 전반 38분, 그의 오른발이 다시 불을 뿜었다. 1-0. 후반 추가시간 95분, 쐐기골. 2-0. 경기가 끝났다. 그러자 기네스 월드 레코드가 공식 발표를 올렸다. 단 하나의 경기에서 세운 네 개의 세계 기록을 세운 인간이 된 거다. 그리고 그 다음다음날은 그의 39번째 생일이었다.
‘Back of a Napkin’이란 말이 있다. 냅킨에 끄적이듯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 형식을 갖추지 못한 가능성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이 표현이 품고 있는 진짜 진실은 ‘위대한 시작은 언제나 그 생각을 담는 초라한 그릇을 타고 온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냅킨이 아니라, 그것을 집어드는 손 안에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알아볼 수 있을 뿐’이란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