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주의 한 한인 가정에서 벌어진 남편 살해 사건의 재판이 시작됐다. 한인 여성이 한인 남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지만, 법정에서는 수년간 부부 사이에 이어졌다는 가정폭력이 비극의 배경으로 떠오르면서 살인인지 정당방위인지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25일 타코마 지역지 더 뉴스 트리뷴(The News Tribune)보도에 따르면, 한인 신영미(54)씨에 대한 2급 살인 혐의 배심원 재판이 24일 워싱턴주 피어스카운티 수피리어법원에서 시작됐다.
신씨는 2024년 11월 27일 타코마 남쪽 파크랜드의 자택에서 남편 제이 최(62)씨를 부엌칼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 이후 체포된 신씨는 100만 달러의 보석금이 책정된 채 피어스카운티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신씨가 남편을 흉기로 찌른 사실 자체가 아니라 당시 행동이 2급 살인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오랜 가정폭력 끝에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벌인 정당방위였는지를 가리는 데 있다.
검찰은 사건 당일 최씨가 911에 전화해 아내가 자신을 때리고 있다고 신고하던 중 신씨의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칼을 막으려다 손에 방어흔을 입었으며, 피하려는 과정에서 등을 찔렸다는 것이 검찰 측 설명이다.
검찰은 또 사건 이후 신씨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사용한 칼을 씻었다는 점 등을 제시하며 정당방위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이 법정에서 제시한 사건의 배경은 전혀 다르다.
신씨의 변호인 테이머 아스케로프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사건 당일 벌어진 부부싸움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신씨가 결혼생활 동안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인 신체적·정신적 폭력과 성적 학대를 당해왔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에 따르면 사건 당일에도 술을 마신 최씨가 신씨의 얼굴을 때리고 죽이겠다고 위협했으며, 머리카락과 옷을 붙잡고 집 안으로 끌고 다니는 등 폭행을 가했다.
신씨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놓였고, 결국 남편의 공격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칼을 사용했다는 것이 변호인 측 주장이다.
변호인은 부부 사이의 폭력이 오랜 기간에 걸쳐 점차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손목을 붙잡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주먹질과 발길질, 머리채를 잡아당기거나 목을 조르는 행위로까지 악화됐다는 것이다.
사건 당일 최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5를 넘었던 것으로 변호인 측은 밝혔다.
신씨 측은 가정폭력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도 배심원들에게 제시할 예정이다.
변호인은 2022년 남편에게 폭행당한 뒤 신씨를 진료했던 의사를 증인으로 출석시키고, 사건 발생 약 두 달 전 신씨의 몸에 남아 있던 멍을 촬영한 사진도 증거로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 기록에도 신씨가 이전에도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으며 과거 폭행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진술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씨에 대한 경찰 조사 과정도 재판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변호인 측에 따르면 신씨는 사건 현장과 이후 조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변호사를 요청했지만 경찰 조사가 계속됐다. 재판부는 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해 당시 신씨가 경찰에 한 일부 진술을 검찰이 증거로 사용하는 데 제한을 둔 것으로 전해졌다.
한인 부부 사이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지역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가들의 관심도 끌고 있다.
신씨를 지지하는 활동가들은 그가 오랜 가정폭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방어했음에도 살인 혐의로 장기간 구금돼 있다며 검찰에 기소 취하를 요구하고 있다. 재판 첫날 법정에도 신씨를 지원해온 주민과 활동가 약 20명이 참석했다.
변호인 측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해온 전문가도 증인으로 출석시킬 예정이다. 장기간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가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는지가 신씨의 행동이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배심원단은 한 한인 가정에서 오랜 갈등과 가정폭력 주장 끝에 남편이 숨진 이번 사건을 살인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생명의 위협을 느낀 가정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로 인정할 것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김상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