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고 다 잘나가는 건 아니다. 선망의 직업, 하지만 ‘의사’도 돈 걱정하는 직장인일 뿐이라는 것. 그 ‘있어보이는 직업’의 민낯을 보여준 건 웹툰 ‘내과 박원장’ 덕분(?)이다. OTT 티빙에서 잘 생겼던 이서진이 ‘대머리 의사’로 변신해 열연중인 ‘내과 박원장’이야기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였던 멋지고 사명감 넘치는 의사가 아닌 삶에 찌들고 세월의 무게에 눌린 ‘의사’다. 웹툰에서 ‘박원장’은 탈모와 복부비만인 펑퍼짐한 ‘중년 아저씨’다. 드라마로까지 제작되며 인기인 웹툰 ‘내과 박원장’의 비결은 짠내나는 현실감이다. 작가 경험이 녹아있다, 20년 간 진짜 의사로 활동했다.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내과 박원장을 연재중인 장봉수 작가다. 만화 ‘내과 박원장’이 대박이 터지자 그는 지난해 의사 가운을 벗고, 전업 만화가로 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어요. 보물섬부터 소년중앙까지 나오면 매달 봤죠. 어린 시절 상가에 살았는데 옆에 만화가게에 몰래 들어가 만화를 보고 그랬어요.”
최근 만난 장봉수 작가는 “대학 진학때에 의대와 미대 사이에서 무척 고민했다”고 했다. “결국 부모님 조언으로 의대 진학에 했지만 그 당시에도 의사하면서 만화를 그리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의사를 하면서 만화를 그리기는 쉽지 않았다. 전공의 과정을 거쳐 시골에 병원을 개원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개원을 하고 중반쯤 됐을 때 만화가 너무 그리고 싶은데 시간이 없었어요.”
미련을 버릴수 없어 콘티 형식으로 만화를 그려 커뮤니티에 한번 올려봤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 호응에 몇 편 더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고, 이 당시 콘티 형식으로 만든 만화가 지금의 ‘내과 박원장’의 시초가 됐다.
의사 커뮤니티 ‘메디게이트’에 개원 경험을 담아 올린 ‘내과 박원장’ 콘티는 개원의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지만 의사 만화를 이렇게 계속 그리고 싶던 건 아니었어요. 의사가 직접 의사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하면 논란의 중심에 서니까. 의사 이야기를 하면 욕하는 사람들이 있고 우려했던 대로 안 좋은 댓글도 달리더라고요. 그럼에도 만화에 도전하고 싶어서 계속 그렸어요. 그리고 공감하는 분이 훨씬 많아지며 용기를 얻었죠.”
기회가 찾아온 건 지난해 6월 말이었다. 커뮤니티에 올렸던 만화가 인기를 얻자 네이버 도전만화에 지난해 1월 연재를 시작했고 7화까지 작업하던 그에게 드라마화 제의가 들어왔다.
이후 상황은 말 그대로 겹경사였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서 ‘내과 박원장’ 제작이 확정됐고 배우 이서진이 주연을 맡았다.이어 네이버에서 정식 연재 제의를 받게 됐다.
장 작가는 10월부터 의사 생활을 청산하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전업 만화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는 전업 만화가지만 그의 만화에는 여전히 현직 의사의 생생함이 담겨 있다.
‘내과 박원장’ 속 에피소드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웹툰에 등장하는 ‘진상’ 환자 이야기는 100% 실화에요. 개원의 시절에 겪었던 일이죠. 물론 개원의 당시 24시간 진료까지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하.”
진상 환자 외에도 드라마에서도 주목받은 ‘떡볶이’ 에피소드 또한 실화다. 무균실에서 생활하던 말기 암 환자가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하자 박원장이 몰래 그에게 떡볶이를 사다 주며 삶의 희망을 전달해준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아마존 바이러스’ 에피소드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개원의들이 겪었던 경험을 그대로 녹인 에피소드다.
현재의 그를 ‘장봉수’라는 필명을 가진 만화가의 길로 이끈 건 결국 만화에 대한 애정이다. ‘내과 박원장을 통해 ‘의사 만화가’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그의 방점은 만화에 찍혀있다.
장 작가는 내과 박원장이 “의사 이야기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고 의사로 대변되는 이야기도 싫다. 그냥 이 시대 40대 남성의 인생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며 만화의 지향점을 밝혔다. 그는 ‘내과 박원장’이 “결코 의사의 힘듦을 말하고자 만든 내용이 아니다”라며 “핵심은 40대 가장의 삶이고 의사를 포함한 모든 40대 가장의 힘듦을 표현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사 만화가라는 타이틀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본명 대신 필명으로 서봉수 9단의 이름과 자신의 성을 합친 ‘장봉수’를 사용하고 매체를 통해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현직 의사라는 사실이 어쩔 수 없이 알려졌고 그게 부담이 됐다”며 “신비주의를 의도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의사라는 직업은 그에게 부담과 동시에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박원장’과 같이 일하는 많은 의사에게 하나의 다른 대안으로 제가 존재한다는 책임감도 느낍니다. 다들 40대가 넘어가면 꿈도 희망도 없다고 하는데 40대 넘어서 꿈을 찾아가는 내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의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현직 의사로서의 소신도 밝혔다. “엘리트 학생들의 의사 지향이 조금 줄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경쟁은 과하다고 생각해요. (의사라는 직업이) 학습 능력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경제력도 보장하지만 벤쳐기업이나 IT기업으로 가도 좋지 않을까. 뛰어난 능력을 (지나친 의사 지향)으로 낭비하는 건 아니냐는 생각도 들어요.”
그는 ‘내과 박원장’이 이를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의사 지향 풍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긍정적 기대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연재 중인 ‘내과 박원장’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장 작가는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는 “40화 정도에서 완결이 날 거고 결말은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내과 박원장 이후 그는 ‘의사 만화가’가 아닌 ‘만화가’로서의 도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항상 만화를 그리려고 해 아이디어 메모가 쌓여있다는 그의 차기작은 바둑 만화다. 천재 바둑 소녀가 펼치는 진짜 바둑 이야기라고 그는 귀띔해줬다. “다른 바둑 만화보다 조금 더 바둑에 대한 이해를 깊이 집어넣은 작품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박원장처럼 현실적인 모습을 버리지 않았다. “만화가로 평생 살고 싶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의사 일을 하면서 만화는 다시 취미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만화 그리기’는 멈출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평생 그릴 건데. 지금은 운이 좋으니 정식 연재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만화는 앞으로도 계속 그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