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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타임스케치] 누가 마이크를 끊었나

오스카 시상식이 드러낸 차별과 배제의 구조

2026년 0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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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칼럼니스트

1940년 2월 29일 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출연진이 LA 앰배서더 호텔에 모여 앉았다. 비비언 리, 클라크 게이블,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이들 외에 흑인 최초로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였던 헤티 맥대니얼(Hattie McDaniel)도 그 자리에 있었다.

허나 그녀만은 동료들의 테이블이 아니라 뒷편 벽 쪽에 놓인 작은 탁자에 홀로 앉아야했다.
당시 호텔은 엄격한 ‘흑인 출입 금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날 밤 그 곳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제작자의 특별한 부탁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 ‘특별 예외’ 덕에

그녀는 수상자 호명을 듣고 무대로 걸어 나가는 오스카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시상식이 끝난 뒤 애프터파티에서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수상의 영예는 그녀의 것이었지만 그 밤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거다. 아무도 규칙을 어기지 않았고 단지 그 시대의 ‘관행’이 작동했을 뿐이었다.

33년이 흐른 1973년, 말론 브란도가 ‘대부(代父)’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시상식을 보이콧했다.

대신 26세의 아파치-야퀴족 원주민 배우 사친 리틀페더(Sacheen Littlefeather)를 무대에 올려 할리우드가 원주민을 묘사하는 방식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그녀는 전통 의상을 입고 단상 앞에 서서 말을 시작했다. ‘영화계의 아메리카 원주민 처우로 인해…’ 그 첫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야유가 터져 나왔다. 제작진은 그녀에게 60초의 시간만을 허락했고 말론 브란도가 준비한 8페이지 분량의 연설문은 끝내 읽히지 못했다.
차분히 무대를 내려온 그녀는 그 후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감을 잃어야했다. 아카데미가 그녀에게 공식 사과문을 보낸 것은 그로부터 50년 후인 2022년이었다.

이 두 사례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누군가의 말이, 존재가 그 어떤 금지 없이도 조용히 그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것.

K팝 곡으로 오스카 최초 수상 기록을 세운 EJAE가 감격에 찬 소감을 밝히는 도중,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깔며 발언을 끊자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ABC 방송 영상 캡처]
사회학자 조안 윌리엄스는 이를 두고 ‘중심을 보편으로 착각하는 것’이라 불렀다. 이는 어떤 집단에게 적용되는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은 그것에 알아서 맞춰가야 하는 구조로 차별의 의도는 없어 보이지만 불평등한 결과가 반복되는 것이다. 간접 차별이다.

규칙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듯해도 애초부터 그 설계 기준이 특정한 곳에 있었다면 그 규칙은 이미 중립이 아닌 거다. 시상식의 시간 제한을 생각해보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수상자는 같은 60초 안에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이 절반도 안 될 거다. 문화권에 따라 감사 인사 자체가 긴 의식일 수도 있다. 예의 때문이다. 규칙은 평등하지만 그 규칙 안에서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지난 3월 15일,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로 K팝 사상 최초로 오스카 최우수 오리지널 노래상을 수상한 ‘Golden’ 팀이 무대에 올랐다. 공동 작곡가 이재가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또 다른 작곡가 유한이 마이크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다. 팀원 한 명이 ‘계속하게 해달라’고 외쳤음에도 모두 퇴장을 안내받았다. 그날 출연진에게 할애된 시간은 3분이었지만 이들이 무대 위에 있었던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이것이 차별이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의미심장하다. 의도없이도 반복되는 패턴, 그것이 바로 구조의 증거이어서다.
문제는 헤티 맥대니얼, 사친 리틀피터 이후 오늘도 무대 위에서 말을 잇지 못한 채 퇴장을 안내받고 있는 이러한 권력은 오스카 무대에만 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회의실에서 누군가의 발언이 끝나기 전에 다른 사람이 말을 이어갈 때, 외국 억양으로 말하는 동료의 이야기가 반쯤 흘러들릴 때, 그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끝나도 되는 순간을 기다릴 때,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누군가의 마이크를 조용히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별의 의도는 없다는 인식’으로 그저 ‘익숙한 방식’대로 말이다.
마이크를 밀어낼 ‘오케스트라는 지금도 어디에서나 준비’되어 있음이다.

이전 칼럼 [김학천 타임스케치] 버티는 자가 이긴다… 약자의 무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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