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행정부의 대대적인 이민단속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토안보부(DHS)가 개인의 금융거래 내역부터 자동차 번호판과 이동 경로까지 광범위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감시 체계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범죄 혐의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금융활동을 분석해 일선 경찰에 정보를 넘기고 차량을 세우도록 하는 이른바 ‘예측 치안(predictive policing)’ 방식까지 운영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사생활 침해와 과잉 감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술 전문매체 404미디어는 지난 8일 DHS 산하 국경순찰대(Border Patrol)가 ‘예측정보표적팀(Predictive Intelligence Targeting Team·PITT)’이라는 비밀 성격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리퍼블릭도 같은 날 이 내용을 인용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PITT는 개인의 금융활동을 포함한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특정 인물을 잠재적인 조사 대상으로 선별하고 이 정보를 지방 경찰기관에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해당 인물이 특정 범죄 용의자로 지목되거나 범죄를 저질렀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도 차량 검문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다.
실제 몬태나를 운전해 지나던 카일 올슨의 경우 PITT가 그의 금융활동을 분석한 뒤 관련 정보를 지방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후 번호판이 가려져 있다는 이유로 올슨의 차량을 세웠다. 관련 법원 자료를 통해 PITT 조직의 존재가 확인됐다고 404미디어는 전했다.
최소 한 개 PITT 조직은 워싱턴주 스포캔 인근 미·캐나다 국경지역에, 또 다른 조직은 텍사스주 라레도 인근 미·멕시코 국경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금융정보가 분석 대상인지, 금융정보 확보 과정에서 영장이 사용됐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국경순찰대는 404미디어에 정보에 기반한 분석과 계획을 통해 국가안보 작전을 지원하고 잠재적 위협과 공공안전 위험 인물을 파악하고 있다며 관련 활동은 법과 정책, 개인정보 보호 규정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데이터 출처와 분석 기준, 수사기법 등은 작전 보안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DHS의 감시망에서 또 하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자동차 번호판 자동인식 시스템(ALPR)이다.
ALPR 카메라는 지나가는 차량의 번호판을 자동 촬영해 차량 번호뿐 아니라 촬영 시간과 위치 등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이 기록이 장기간 축적되면 특정 차량이 언제 어디를 이동했는지 역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액시오스는 9일 미국 전역에 약 14만대의 자동 번호판 인식기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이 시스템은 원래 도난차량이나 범죄 용의자를 찾기 위한 경찰 장비로 확산됐지만 ICE 등 연방 이민기관이 이 데이터에 접근하면서 이민단속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다.
테크크런치는 지난 1월 ICE가 자동 번호판 인식 데이터를 이용해 운전자들이 언제 어디를 이동했는지 추적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 지방 경찰기관을 통해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식도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플록 세이프티(Flock Safety)가 운영하는 전국적인 번호판 카메라 네트워크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404미디어 보도를 토대로 정리된 이민정책추적프로젝트에 따르면 ICE가 플록과 직접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도 지방 경찰기관에 대신 데이터 검색을 요청했으며, 연방정부 요청에 따른 이민 관련 조회가 4,000건 이상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에서도 문제가 불거졌다.
캘매터스는 지난해 LAPD를 비롯해 샌디에고·오렌지·리버사이드 카운티 법집행기관들이 ICE와 세관국경보호국(CBP)을 위해 차량번호판 정보를 조회한 사례가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법은 원칙적으로 지방 경찰이 연방 이민기관과 ALPR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금융정보 활용도 이미 DHS의 광범위한 감시 체계에 포함돼 있다.
ICE 관련 연방 기록에는 은행비밀법(Bank Secrecy Act)에 따라 보고된 금융자료를 비롯해 은행 계좌번호, 거래번호, 거래 금액과 내용 등이 수집 가능한 금융 데이터로 명시돼 있다. 위치정보와 상업적으로 확보된 데이터 역시 조사 자료에 포함될 수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각종 정보를 한꺼번에 결합하는 기술까지 도입되고 있다.
ICE가 사용하는 펜링크(PenLink)의 ‘탱글스(Tangles)’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정보를 금융기록, 연락처, 위치정보 등과 연결해 특정 인물과 주변 인맥에 대한 종합적인 프로필을 구축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 감시기술을 분석한 보고서는 ICE와 CBP가 올해 11개 주요 감시기술 업체에 지급하거나 계약한 금액이 5억1,300만달러에 달해 2013년 5,000만달러 미만이던 수준에서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지난 6월 이 보고서를 인용해 트럼프 2기 들어 이민 감시기술 투자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각각 별도로 존재하던 금융정보와 차량정보, 얼굴인식, 휴대전화 위치정보, 소셜미디어 기록 등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될 경우 정부가 개인의 생활과 이동을 사실상 실시간에 가깝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규모 이민단속 과정에서 이 같은 시스템이 사용될 경우 불법체류자뿐 아니라 합법 이민자와 시민권자까지 감시망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DHS는 국가안보와 범죄 예방, 이민법 집행을 위해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시민단체들은 영장이나 구체적인 범죄 혐의 없이 개인의 금융활동과 이동 기록을 분석하는 것은 기존 수사의 범위를 넘어서는 ‘대규모 감시 체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상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