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 수치 구체적 조정 지시…”예산 삭감”, “사표 내라” 압박도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주도 하에 주택, 소득, 고용 관련 국가통계를 4년 넘게 광범위하게 조작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로 밝혀졌다.
통계 조작 등과 관련한 위법·부당행위는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4년 5개월에 걸쳐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통계작성기관인 한국부동산원과 감정원에 예산 삭감과 인사 조치 등을 언급하며 직간접적으로 압박해 통계수치를 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집값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한 사례는 감사원이 확인한 것만 102건에 달했다.
감사원은 17일 이 같은 내용의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조사(고용통계)를 감사대상으로 했다.
감사 결과, 대통령비서실(11명)·국토부(7명)·부동산원(7명)·통계청(6명)의 위법·부당하게 업무처리한 관련자 총 31명에 대해 징계요구(14명)·인사자료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요구 처분했다.
감사원이 2023년 9월 직권남용, 업무방해, 통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한 대통령비서실·국토부·통계청·부동산원 소속 22명 중 일부 주요 관련자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 요청, 인사통보의 실익 등을 고려해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당시 수사의뢰 대상자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포함됐다.
◇靑·국토부, 집값 통계자료 사전 제공 지시 후 외압…부동산원도 거부 끝에 수용
감사원에 따르면 주택 가격의 경우, 청와대와 국토부는 부동산원에 ‘통계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주택통계를 사전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결과를 임의로 수정하고, 통계 개선 명목으로 표본가격 조작 등 통계왜곡을 은폐했다. 청와대-국토부-부동산원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특정 수치 조정에 대한 구체적 지시 뿐만 아니라 질책, 압박 등이 이뤄진 점도 감사원이 확인했다.
청와대는 2017년 6월께 “통계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부동산원에 주중치(작성 중인 통계) 등을 사전제공하도록 지시했고 부동산원은 조사 기간이 짧아 통계 신뢰성 확보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최소 12차례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국토부는 이를 거부하고 서울 뿐만 아니라 수도권 지역 매매가격, 서울 전세가격 등으로 사전제공 대상을 오히려 더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국토부가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총 102회(전세 16회 포함)에 걸쳐 부동산원의 통계 작성 과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통계수치를 조정한 사실이 감사에서 드러났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도 감사원이 확인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8년 1월 서울 양천, 성남 분당의 주택 매매가격 주간 변동률 왜곡 등 부당한 외압이 처음 시작됐고, 2018년 하반기 부동산 시장이 급등하자, 특정 지역 개발계획 철회 등의 정부발표 내용이 부동산 시장 안정에 효과를 준 것처럼 객관적 근거도 없이 통계에 반영토록 요구했다고 감사원이 전했다.
실례로 청와대는 2018년 8월 24일 서울 지역 주중치가 0.67%로 보고되자, 국토부·부동산원에 용산·여의도 개발계획 보류 발표 및 8·27 부동산대책 등을 반영해 속보치·확정치를 낮추도록 지시했다. 부동산원이 표본가격을 하향 조정해 속보치 0.47%로 산출했음에도 청와대는 재차 재검토를 지시, 다음날 확정치를 0.45%까지 하향 조정 후 공표하게 했다.
2019년 들어 상반기 서울 주택시장이 다시 상승세로 나타나자, 같은해 6월 대통령실·국토부가 대통령·장관 취임 2주년을 앞세워 부동산원에 변동률 하향 조정을 요구한 사실도 감사에서 적발됐다. 특히 2019년 7~8월에는 국토부 실장과 차관이 부동산원장을 연이어 불러 “원장님 사표 내시죠”, “정부 부동산 정책과 당신은 맞지 않아요”라며 사표를 내라고 하는 등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2020년에는 대통령실이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선거에서 불리할 것을 우려해 규제지역 확대 등을 미루는 대신, 주간 변동률을 관리하기 위해 수도권 일대 집값 관련 통계자료(주중치)·보고를 추가 요구했다.
또 6·17부동산대책, 7·10 부동산대책에도 불구하고 상승세가 계속되자 청와대와 국토부는 정부 대책으로 시장이 안정된 것처럼 변동률 하향 조정을 요구, 2020년 8~10월 10주간 변동률이 0.01%로 동일하게 공표되는 등 통계 왜곡이 심화됐다.
대통령실은 특히 강남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의 경우 주간 변동률이 주중치에서 0.01% 등 상승된 수치로 보고될 경우 국토부에 민간통계와 다르게 상승폭이 확대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도록 지시했고, 국토부가 부동산원에 통계를 새로 작성하라고 하는 등 강하게 질책, 2020년 8월 2주부터 11월 2주까지 14주간 강남4구 주간 변동률이 일관되게 0.00%로 변동 없이 유지되도록 통계를 왜곡했다.
2020년 7월 13일에는 7·10 부동산대책 발표 직후 속보치가 전주(0.11%)보다 높은 0.12%로 보고되자, 대통령실이 국토부에 전화해 “국토부는 지금 뭐하는 거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이에 국토부는 부동산 대책효과를 변동률에 반영해 변동률을 한 자릿수(0.09% 이하)로 맞추도록 부동산원에 요구했고, 부동산원은 표본가격을 총 149차례 수정해 전주보다 낮게 변동률 하향 조정 후 0.12%→0.09%로 바꿔 공표했다. 이를 통해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아파트의 경우 표본가격이 당초 31억7000만원에서 31억4000만원으로 3000만원 차감 조정됐다.
부동산원이 표본보정 명목으로 표본가격을 조작하거나 표본을 전면 교체하는 방법으로 통계왜곡을 은폐한 사실도 확인됐다.
부동산원은 표본주택가격 조사를 기초자료로 통계지수를 산정하고 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를 작성·공표하고 있으나, 표본 아파트명, 동·호수 및 개별 표본주택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관련법상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국토부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로 통계왜곡이 지속되면서 주택가격동향조사 변동률이 시장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됐고,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시장가격과 표본가격 간의 격차는 점차 커졌다.
감사원은 “국회·언론은 국정감사 등에서 주택가격동향조사 변동률 등이 시장상황 및 민간통계 등과 다르다며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했으나, 개별 표본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표본가격이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진 사실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감사 과정에서는 2019년 1월 표본 1만2615건, 2020년 1월 표본 1946건의 가격을 시세대로 일괄 상향입력하면서 전기 대비 변동률이 상승되지 않도록 이미 확정·공표된 전기 표본가격도 일괄 상향하는 등 전산데이터 조작 행위가 적발됐다.
또한 2021년 7월 신표본 변동률 산정부터 한 주간 변동률 상승분을 임의로 여러 주차에 분산 반영하는 방법을 시행해 통계 왜곡을 지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례로 역삼래미안아파트의 경우 전기 표본가격을 당기에 맞춰 14억2000만원에서 17억3000만원으로 상향해 시세 변동률을 0%로 만들었다.
◇’소득 불평등 역대 최악, 비정규직 급증’ 통계 수치도 임의로 왜곡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인 ‘좋은 일자리 만들기’와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소득 분야 통계에서는 2017년 2·3·4분기 및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통계결과를 왜곡한 사실이 감사에서 지적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각각 2·3·4분기 가계소득 가집계 결과, 전년 대비 감소로 확인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키는 등 통계를 왜곡했다.
청와대는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에 개인정보 등이 포함된 통계자료를 사전제공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고, 한노동연구원에 ‘최저임금인상으로 개인별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으로 보고·발표하도록 지시했다. 또 통계청은 대통령실 지시에 따라 통계자료 제공 관련 보도설명자료 등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발표했다.
고용 부문 통계에서는 2019년 경제활동인구조사의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와 관련된 비위 사실이 감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란 통계청이 매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로 파악된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규모 및 근로형태 등에 대한 추가조사를 의미한다.
당초 통계청은 2019년 경제활동인구조사의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가집계 결과, 비정규직(기간제) 급증을 예상하고 단시간 취업자 증가 등 여러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지만, 대통령실은 비정규직 급증의 주된 원인은 조사방식(병행조사)의 문제 때문이라고 보고, 2019년 비정규직 규모는 ‘전년도 수치와 비교 불가’하다고 작성하도록 지시, 통계청은 대통령실 요구를 반영한 보도자료를 수정 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