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에 대해 미국 각 주 지방법원이 내린 전국단위 효력 정지 명령은 잘못됐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이 결정이 출생시민권 제한의 합헌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며, 주별로 소송 여부에 따라 행정명령의 효력이 갈리는 ‘이중 체계’가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27일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연방대법원이 6대3으로 “지방법원이 개별 원고에 대한 구제를 넘어 전국민을 대상으로 효력을 정지시킨 것은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는 다수 의견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대법원 보수 성향 대법관 6명은 “전국 금지명령은 의회가 연방법원에 부여한 권한을 초과한 것”이라며, 전국적 효력의 금지명령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의 위헌 여부를 본격 판단한 것이 아니라, 하급심 법원의 효력 정지 범위가 적절했는지를 따진 절차적 결정이다. 그러나 전국 금지명령이 무력화되면서 해당 행정명령은 30일 이내에 일부 주에서 시행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 임기 첫날, 불법체류자 또는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에게는 출생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뉴저지, 워싱턴, 캘리포니아 등 22개 주가 위헌 소송에 참여, 메릴랜드·워싱턴·메사추세츠 지방법원은 수정헌법 제14조와 1898년 대법원 판례(Wong Kim Ark)를 근거로 행정명령 효력을 정지시키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당시 하급심은 그 효력 범위를 ‘전국민’으로 넓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고가 아니거나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주의 시민에게까지 효력 정지를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시했다.
어디서 효력이 정지되고, 어디서 시행되나?
대법원 판결에 따라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의 적용 여부는 소송 참여 여부와 법원의 금지명령 존재 여부에 따라 갈린다.
● 출생시민권 제한 효력이 정지된 주 (소송 참여 및 금지명령 인정):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워싱턴, 메사추세츠, 메릴랜드, 일리노이, 콜로라도, 미시간, 오리건, 하와이, 등 총 22개 주 (주정부가 공동원고로 참여한 주들)
이들 주에서는 원고 자격이 인정되었고, 해당 지방법원의 금지명령도 유효하기 때문에 당분간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이 적용되지 않는다.
● 출생시민권 제한 적용될 수 있는 주 (소송 미참여 또는 금지명령 부재):
텍사스, 플로리다, 조지아, 앨라배마, 사우스캐롤라이나, 아이다호, 노스다코타, 아칸소 등,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공화당 주정부 중심의 주들
이들 주에서는 현재까지 별도의 효력 정지 명령이 내려지지 않아, 오는 30일 이후 트럼프 행정명령의 출생시민권 제한 조항이 그대로 시행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을 통해 “대법원에서 거둔 거대한 승리”라고 자평하며, 기자회견 개최를 예고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출생시민권 자체의 헌법적 지위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으며, 각 주별 추가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WSJ은 “대법원이 ‘주정부가 원고인 경우엔 전국 효력의 금지명령이 가능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겨뒀다”며, 향후 일부 주에서는 다시 한 번 전국 효력을 인정받기 위한 법리 다툼이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판결은 한 명의 연방판사가 전국 정책을 동결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해 대법원이 처음으로 실질적 제동을 건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NYT는 이를 두고 “민주·공화 양측 행정부 모두가 정책 저지를 위해 사용해 온 강력한 도구 하나가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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