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핵경계태세를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전쟁이 핵강국들 사이의 실제 핵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7일 보도했다.
러시아의 핵경계태세 강화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재래식 무기만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결과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푸틴은 핵무기가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국가들로 하여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지위에 대해 원하는 바를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푸틴의 그 같은 행동으로 의도되거나 의도되지 않은 상황 악화가 발생하는 위험성이 커졌다.
사실 푸틴의 핵위협은 서방이 러시아의 침공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위협일 가능성이 크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안정-불안정 모순이라고 부르는 상황이다. 핵보유국들은 핵전쟁 위험성 때문에 전면전을 벌이기를 꺼리지만 동시에 전면전이 서로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재래식 전쟁 또는 제한적 핵전쟁의 가능성이 커지기도 한다는 이론이다.
러시아의 재래식 전쟁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푸틴은 긴장을 고조시켜야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게 된 셈이다. 푸틴이 핵대비태세 명령을 비밀에 부치지 않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핵을 언급함으로써 전세계에 메시지를 발해 다른 나라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려는 것이다.
푸틴의 방식은 새롭지 않다. 파키스탄, 북한 등은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핵전력으로 뒤집으려 시도해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역시 냉전시기 핵에 의존해 긴장을 고조시킨 적이 있다. 핵 선제 사용 위협으로 재래식 공격을 막거나 재래식 전쟁의 패배를 막기 위한 것이다. 파키스탄은 2001~2002년 인도와 전쟁에서 재래식 전쟁에서 불리하자 핵사용을 위협했고 이스라엘도 1973년 아랍연합군에 대해 핵위협을 가했었다.
푸틴의 핵위협은 의도적 또는 우발적 핵전쟁이 발생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우선, 의도된 핵전쟁은 푸틴이 실제로 단거리 전술핵무기 등을 사용할 경우에 발생한다. 애당초 전술핵무기는 재래식 무기가 할 수 없는 일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1,2일 사이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시민에 대한 공격 가능성이 커진 것도 같은 이유다. 푸틴 입장에서는 핵위협이 러시아가 원하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또하나의 지렛대일 뿐인 것이다.
푸틴은 또 중거리 핵무기로 우크라이나를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으로 지원하는 유럽국들을 위협할 수도 있다. 나토 회원국을 상대로 한 이런 위협은 상황을 극단적으로 악화시켜 미국이 나토기본헌장 제5조에 따라 나토 동맹국 방어에 나서도록 할 수 있다.
둘째, 핵경계태세를 강화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우발적인 핵전쟁 위험성이 높아진다. 실제 그런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러시아 핵무장 군대의 경계태세가 높아짐에 따라 핵사령부의 핵무기에 대한 통제 및 절차가 완화됨으로써 핵무기가 쉽게 발사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가 실제로 이런 작전을 훈련하면서 얼마나 안전하게 진행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사고와 승인받지 않은 핵사용 가능성도 높아진다. 중국이 1969년 소련과 대결할 당시 국경에 초보적인 핵무기들을 국경에 전진배치한 사례에서 보듯 핵보유국들은 자신들이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음을 과시하는 위험한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나아가 러시아의 핵경계태세 강화는 미국, 프랑스, 영국의 맞대응을 유발할 수 있다. 이들 나라들도 핵경계태세를 강화하게 되면 양측 모두가 상대방의 핵공격이 임박했다고 오판할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서로 상대에 대한 불신이 큰 시기일수록 위험성이 더 커진다. 애매한 신호만으로도 상대방의 의도를 오판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우발적 핵전쟁이 발생할 위험성이 가장 큰 시나리오다.
전쟁중인 나라들은 이것저것 재기보다 쏘기부터 하는 것이 보통이다. 1983년 대한항공 여객기를 격추한 소련의 행태는 미국과 핵대결이 심화되던 시기에 발생했으며 2020년 미국이 카셈 솔레이마니 이란 장군을 공격한 뒤 이란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같은 의도적인, 또 우발적인 핵긴장 고조에 더해 독재자인 푸틴의 개인적 성향이 갖는 위험성도 있다. 독재자들은 의사결정에 아무런 제한이 없고 보좌관들의 솔직한 의견을 듣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러시아 기준에서 볼 때 연로한 지도자인 푸틴은 현재 위기가 외교적 목적 달성은 물론 국내 정치적 기반마저 위협해 자신의 생존까지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푸틴은 또 자신이 궁지에 몰리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미친 사람 전략을 취하는 것일 수도 있다. 1958년~1961년 베를린 위기 때 흐루시초프와 1969년 베트남전때 닉슨도 이같은 전략을 사용했었다. 당시는 이 전략이 크게 효과를 내지 못했었다. 두 사람이 푸틴보다는 훨씬 더 신중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푸틴은 자신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위험한 핵위협을 기꺼이 사용하려는 성향을 가졌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