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푸틴에게 최악의 한 주였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허둥지둥 쫓기면서 점령지를 뭉텅 빼앗겼고 중국과 인도 지도자는 푸틴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27억 자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아이콘 여가수가 인스타그램 팔로워 340만명에게 전쟁이 “우리 나라를 고립시키고 삶을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지난주는 한마디로 지혜도, 정의도, 관용도, 플랜 B도 푸틴에게 없음이 드러난 때였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 전기를 맞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 방안을 검토하는 칼럼을 실었다. 필자는 NYT에서 40여년 재직해온 토머스 프리드먼이다.
유럽의 당국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는 우려의 기색도 역력했다. 오랜 기자 경험으로 떠들썩한 것들만이 아니라 언급되지 않는 것들도 뉴스가 된다는 걸 안다. 지난 주 언급되지 않은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물리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전쟁 시작때부터 제기된 의문에 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쟁을 무리없이 끝낼 수 있는 방안 말이다. 아직 답을 알 순 없지만 가능한 방안을 정리해봤다.
-시나리오 1은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승리다. 푸틴이 모멸감을 느낄 방안이다.
-시나리오 2는 푸틴과 합의해 전쟁을 끝내는 지저분한 방안이다. 서방을 분열시키고 우크라이나인들을 격분시킬 것이다.
-시나리오 3은 비교적 덜 지저분하다. 푸틴이 침공하기 전의 국경으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도 동의할 수 있고 러시아 국민들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푸틴이 먼저 축출돼야 한다. 그가 일으킨 전쟁이 헛수고였다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1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2주동안 이뤄낸 성공적 반격을 이어가 러시아군을 국경 밖으로 몰아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다만 “러시아군이 사실상 붕괴한다면 어떨까”라고 질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분명 러시아군과 이들에 의탁한 러시아어 사용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상당수가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게 마지막까지 죽어선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이 전쟁이 완전한 사기라는 걸 모든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푸틴이 추가로 파병한 병력이 사면을 대가로 입대한 죄수들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시리아에서 차출된 용병도 있다.
푸틴을 지지하는 러시아군 병사나 러시아어 사용 주민들이 “남아야 하나 도망쳐야 하나. 전선이 무너지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푸틴이 여러차례 핵위협을 해왔기에 중앙정보국(CIA)가 푸틴의 핵명령을 가로채 핵단추를 누를 사람이 없도록 비밀공작을 해야 한다고 본다.
시나리오 2는 현재 상태에서 휴전하는 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방안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승기를 잡아 실지를 한발한발 되찾고 있는 와중이다. 그러나 겨울이 닥쳤을 때 푸틴의 에너지 공급 차단으로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이 식비와 난방비 지출 사이에서 고민하게 될 상황을 잊어선 안된다.
푸틴이 천명해온 전쟁 목표에 크게 미달되는 것이기는 해도 현재까지 얻어낸 것에 만족할 지도 모른다. 적어도 완전한 수모가 아닌 변명거리는 남겨둘 수 있는 것이다.
유럽지도자 다수가 말은 하지 않지만 이 방안을 지지할 것이다. 은퇴한 유럽의 고위 정치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목표는 승리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목표는 조금 다르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값을 치러야 한다면 일부 유럽 지도자들이 그럴 용의가 있다. 미국은 다르다. 전쟁을 계속해 러시아를 약화시킴으로써 다른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
그는 EU가 어느 때보다 단합돼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몇 달 새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크게 분열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U의 공식 입장은 변하지 않았지만 전쟁을 일으킨 푸틴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어떻게 끝내야 할 지를 두고는 의견이 갈린다는 것이다. 특히 겨울에 대중들의 반발이 커질 때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발트해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루한스크와 도네츠크를 내주는데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마이클 만델바움은 푸틴도 체면을 차릴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자신이 휴전 협상 준비가 돼 있으며 협상이 타결되면 천연가스 공급을 재개할 것이라고 발표함으로써 EU의 분열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다만 젤렌스키가 이를 받아들이려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식 가입 등 완전하고 영구적인 안보 보장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 시나리오는 살인과 중절도를 저지른 푸틴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유럽의 국경을 바꾸도록 한다는 점에서 지저분하다. 그러나 이 점을 무시하는 유럽인들이 겨울이 닥쳤을 때 이 방안을 밀어부칠 수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시나리오 2-B 방안도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의 합병 주민투표를 러시아 의회가 수용하도록 함으로써 일방적으로 목표 달성을 선언하는 방안이다. 이번주 발표된 주민투표는 2가지 목적이 있다. 친러 우크라이나 주민들 사이의 공포를 진정시키는 한편 우크라이나, 미국, EU를 향해선 “아직도 로켓이 많다. 양심은 없다. 체면 차리지 못하게 만들면 러시아 국민들에게 전쟁 필요성을 설득해 우크라이나를 정말로 망가트릴 것이다. 그로즈니(체첸의 수도)와 알레포(시리아의 대도시)를 잊지 말라”고 협박하는 것이다.
푸틴이 예비역 동원령을 내린 것을 볼 때 이런 방안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시나리오 3은 덜 지저분하지만 푸틴에게는 절망적이다. 나토와 우크라이나가 2월24일 기준의 국경선으로 러시아군이 물러나는 걸 전제로 휴전을 제안하는 방안이다. 우크라이나는 더이상 전쟁 피해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고 무력에 의한 국경 변경 금지의 원칙도 유지된다. 그러나 푸틴은 자국민들에게 “7만명이 사상하고 수천대의 탱크와 장갑차를 잃었으며 엄청난 경제난을 겪었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푸틴이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이 방안은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이익이다. 따라서 푸틴은 대중 시위 또는 궁정 쿠데타로 축출돼야만 한다. 전쟁의 책임은 모두 그에게 지우고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 해제를 대가로 좋은 이웃으로 남기로 약속하는 방안이다. 젤렌스키로서는 2014년 러시아가 차지한 영토를 포기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EU와 NATO 가입절차가 재개될 수 있다.
이번 전쟁은 푸틴의 전쟁이지 러시아 국민들의 전쟁이 아니다. 지금까지 러시아국민들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지 모르지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저지른 대학살의 전모가 전세계에 알려지면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이 러시아의 이름으로 저지른 일들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전쟁이 끝나고 서방이 압류한 러시아 외환 3000억달러를 우크라이나 재건으로 돌리면 러시아 국민들도 전쟁이 공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러시아군에 강간당한 여성들의 기록이 공개되면 러시아인들은 한동안 부끄러워서 해외여행도 못할 것이다.
물론 푸틴이 쫓겨나고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가 집권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이 쉽지도, 지켜지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또 압제적 법률과 냉혹한 비밀 경찰, 반대 지도자의 결여, 푸틴이 자국민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처럼 학대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쉽게 쫓겨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푸틴 대신 들어서는 새 지도자가 극우 민족주의자여서 더 상황이 악화할 수도 있고 수천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나라에서 권력공백과 혼란이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주 보도된 알라 푸가체바가 “러시아인들이 ‘헛된 망상’을 좆으며 죽어가고 있다”며 푸틴에 반기를 든 사건은 매우 특별하다.
시나리오 4는 결말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