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신화에 가장 빠른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아탈란테. 그녀는 ‘나보다 빠른 자만이 나를 얻을 수 있다’는 결혼 조건을 내걸었다. 수많은 남자들이 도전했지만 모두 패배해 죽음을 맞이했다. 이 때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달리면서 황금 사과를 굴리자 그 빛에 그녀가 잠깐 망설이며 멈추는 사이 결승선을 먼저 통과해 승리했다.
신(神)들의 달리기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령 헤르메스는 발에 날개를 달았고, 니케는 승리의 여신으로 숭배 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인들이 가장 원했던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자유로움’을 신발과 승리의 이름 속에 담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수천 년이 흘러 달리던 사람들이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이름을 딴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대학 중거리 육상선수였다. 선수로서는 세계를 제패하지 못했지만, 달리는 자의 발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육상 대회장에서 트럭 트렁크에 실은 신발을 팔던 그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 제국을 세웠다.
독일의 아디 다슬러도 마찬가지였다. 열정적인 운동선수였던 그는 어머니의 세탁실 뒷방에서 운동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저울을 들고 다니며 더 가벼운 원단을 찾았고, 선수들을 직접 만나 신발을 테스트했다. 그의 신조는 단 하나, ‘운동선수에게 오직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훗날 형과 결별하고 세운 회사의 이름은 자신의 애칭을 딴
‘아디다스’였다. 이렇게 해서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샌들은 트럭 트렁크에서, 세탁실 뒷방 작업대 위에서 탄생하게 됐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 마라톤 평원의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40 여Km를 쉬지 않고 달린 데서 유래된 마라톤이 오늘날 42.195 Km로 된 것은 그 전설과 전혀 무관하게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우습지 않은 영국 왕실의 요청에 의해 굳어진 숫자다. 역사적 거리가 아니라 어쩌다 생긴 거리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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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영국 런던 마라톤에서 케냐 출신 사바스티안 사웨 선수가 1시간59분30초의 기록으로 인간의 한계라는 ‘마의 벽’ 2시간을 처음으로 깼다. 이 일로 케냐 고원 해발 2,000m 고원지대에 사는 칼렌진족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국제 달리기 대회에서 따는 금메달의 73%가 이 부족에서 나온다고 한다. 적혈구 수치가 높고 종아리가 가늘고 길다. 그러나 비결이 그런 유전자만의 덕은 아니다. 그곳 아이들은 학교까지 매일 달려 다닌다. 훈련때문이 아니라 각박한 삶에 의한 수단이었다. 마라톤의 황제 킵초게도 이 땅에서 났으며 그의 철학은 ‘No Human Is Limited (인간에게 한계란 없다)’였다.
이러한 피와 땀의 노력 못지 않게 과학의 힘도 있었다. 이번 승리자 사웨는 아디다스의 97g짜리 카본 레이싱화를 신었다. 일찍이 선두주자였지만 한때 나이키에 밀려난 후 절치부심한 아디다스의 철학이 90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42.195km는 우리의 인생을 닮았다. 시작은 누군가의 결정으로 이루어지고 중간에 반드시 벽을 만나지만 결국 끝까지 달릴 수 있는 것은 기술보다는 의지의 문제다. 마라톤 평야를 달려온 병사는 승전보를 알리고 죽었으며 아탈란테는 달리다 멈추었다. 아디 다슬러와 필 나이트는 달리던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신발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사웨는 달리며 인류의 한계를 다시 만들어 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케냐의 붉은 흙길 위에서는 누군가 달리고 있을 거다. 그리고 어딘가의 새벽 길 위에서도 누군가 달리고 있을 거다. 세상이 아직 모르는 이름으로 미래를 향해서.
아탈란테가 황금 사과를 줍지 않고 계속 달렸다면 무엇을 얻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승리였겠지만 대신 이야기를 잃었을 것이다. 달리기의 역설이 거기 있다. 완벽하게 달린 사람보다 달리며 무언가를 겪은 사람이 더 오래 기억된다.
그러고 보면 마라톤은 42Km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42번 이겨내는 것일 게다. 해서 삶이란 한계가 없다고 믿는 것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더 버텨내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는지. 우리 각자의 달리기는 무엇을 향해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