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 월, 부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그리스 올림푸스산을 그 나라 최초의 복합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같은 달,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는 관객이 900 만을 넘기며 흥행 중이다.
도대체 그리스 신화의 무엇이, 2,500 년도 더 지난 이야기들이 오늘날까지도 영화와 문학, 예술의 소재가 되고, 한 산을 세계유산의 반열에까지 올려놓는 것일까?
신화의 중심지 올림푸스(Olympus)는 실제로 존재하는 산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제우스를 중심으로 신들이 살고 있는 상상 속의 산이기도 했다.
궁전이 있고, 연회가 열리고, 신들의 회의도 열린, 요새로 말하면 일종의 신들의 왕궁이자 정부, 국회와 법정까지 합쳐진 그런 곳이었다.
헌데 재미있는 것은 이 신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제우스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하고, 부인 헤라는 질투하며, 포세이돈은 분노하는 등 신들끼리 사랑하고 싸우고 편을 가르고 음모도 꾸민다. 심지어 한때는 부인 헤라와 여러 신들이 제우스를 묶어버리려 한 적도 있었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거의 ‘신들의 탄핵 사태’라 할 수 있다.
그런 올림푸스 산 아래에는 인간들의 세계가 있었다. 산기슭의 도시 디온(Dion)에서는 제우스에게 제사를 올렸다. 마케도니아의 왕들도 이곳에서 신의 도움과 승리를 빌었다.
말하자면 산 위에서는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논하고, 산 아래에서는 인간들이 신의 뜻을 물었던 것. 그리고 그 두 세계를 연결한 것이 그리스 신화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Iliad)’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은 인간들의 전쟁사인데 신기하게도 인간들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올림푸스 신들도 그리스 편과 트로이 편으로 나뉘어 인간들이 전쟁터에서 칼을 휘두르는 동안 그들 또한 논쟁하고, 작전을 세우며, 때로 인간들의 운명에 개입도 한다.
그러니 인간들끼리 벌인 전쟁에 올림푸스도 휘말려 있는 모양새란 얘기다.
이와 달리 ‘오디세이 (Odyssei)’는 전쟁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이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데 무려 10 년을 더 떠돌아야만 했다. 이번에도 한 인간의 귀환을 놓고 올림푸스가 다시 움직였다. 오디세이를 돕는 신이 있는가 하면 그를 미워하는 신도 나선다. 제우스는 신들의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그 명령을 인간 세계로 전달한다.
현데 ‘오디세이’에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한 님프가 오디세이에게 영원한 젊음과 불멸을 줄 수 있다고 유혹한다. 하지만 오디세이는 거절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영원히 사는 것보다,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게 해주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얼핏 신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인간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 이것이 그리스 신화의 힘이었다.
권력을 둘러싼 갈등, 질투와 사랑, 복수와 용기, 전략과 충동, 운명과 선택.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모습을 신들에게 투영한 것이다. 그래서 신들은 인간과 닮았고, 바로 그 때문에 2,500 년이 지나도 낯설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림푸스산이 세계유산이 된 것도 단순히 아름다운 산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곳에 인간이 오랫동안 상상해온 또 하나의 세계가 겹쳐 있기 때문이었을 게다.
산 위에 신들이 있고, 산 아래에는 인간들이 있고 그 사이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내 운명은 어떠한가? 그리고 나는 결국 어디로 돌아가는가?
2,500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질문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올림푸스의 신들은 아직 퇴장하지 않고 우리 곁에 있는게 아닐는지. 영화로, 문학으로, 예술로. 그리고 세계유산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