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디에고 이슬람센터 총격 사건으로 3명을 살해한 총격범들이 반이슬람·반유대주의와 폭력, 사회 혼란을 선동하는 내용이 담긴 75쪽 분량의 선언문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관계자들은 LA타임스에 선언문 제목이 ‘새로운 십자군: 태런트의 아들들’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와 이슬람센터를 공격해 51명을 살해하고 89명을 다치게 한 브렌턴 태런트를 언급한 것이다.
연방수사국(FBI)은 19일 선언문 존재를 조사 중이라고 확인했지만, 온라인에 유포된 문서가 실제 총격범들의 글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LA타임스는 해당 문서를 검토했으며, 내용에는 무슬림과 유대인, 흑인과 라틴계, LGBTQ+ 공동체에 대한 증오가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총격범 가운데 한 명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셜미디어 계정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당 계정들은 학교 총기난사와 백인우월주의, 네오나치 테러리즘을 미화하고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밈을 공유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고 보도했다.
수사당국은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 가능성이 높은 사건으로 분류하고 범행 동기를 조사 중이다. 경찰은 자해 총상으로 숨진 용의자들의 가족과 지인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디지털 활동 기록도 분석하고 있다.

당국은 숨진 총격범들을 17세 케인 리 클라크와 18세 케일럽 리엄 바스케스로 확인했다.
수사 관계자들은 총격범들의 총기 중 한 자루에 증오 문구가 적혀 있었으며, 차량 안에서도 반이슬람 문서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당일 아침 용의자 중 한 명의 어머니는 아들이 유서와 함께 총기를 가지고 집을 나갔다며 다급히 신고했다. 그는 아들이 위장복 차림의 동행자와 함께 떠났다고 말했다.
경찰이 어머니를 조사하던 중 이슬람센터 총격 사건 신고가 처음 접수됐다.
LA타임스는 클라크 명의로 보이는 소셜미디어 계정들을 찾아냈으며, 이 계정들에는 학교 총격 사건을 게임처럼 묘사한 게시물과 남부연합 깃발 앞에서 해골 마스크와 위장복을 착용한 사진 등이 올라와 있었다고 전했다.
또 나치 관련 상징을 착용한 사진들과 함께 네오나치 테러리스트의 글 모음집인 ‘Siege’를 들고 있는 사진도 포함돼 있었다.
틱톡과 스냅챗, 텔레그램 등에 있던 이 계정들은 수백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별다른 제재 없이 운영됐던 것으로 보인다.
LA타임스는 클라크가 실제 작성자인지는 단정하지 않았지만, 게시물 내용과 날짜, 이미지가 선언문 및 그의 개인사와 일치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게시물에는 백인우월주의와 연관된 ‘OK’ 손동작이 등장했고, 또 다른 프로필 사진에는 대량살인을 저지르는 게임 캐릭터 ‘포스털 듀드’ 이미지가 사용됐다.
한 사진에서는 클라크로 추정되는 인물이 금발 가발 효과를 적용한 채 ‘아가르타’라는 가상의 아리아인 세계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이는 네오나치 커뮤니티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미지라고 신문은 전했다.
게시물들에는 극우 인플루언서와 극단주의 커뮤니티 관련 언급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계정 이름에 사용된 ‘그로이퍼’는 극우 인플루언서 닉 푸엔테스 추종자들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푸엔테스의 극우 정치 담론은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백인우월주의 집회 참가자들을 포함한 젊은 남성층에 영향을 미쳤다고 신문은 전했다.
텔레그램 채널 중 하나에는 1999년 컬럼바인 고교 총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제로 데이’ 이미지가 포함된 게시물도 있었다.
한 팔로워가 “왜 제로 데이를 넣었냐”고 묻자 작성자는 “그 영화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마크 레밀리 FBI 샌디에고 지부 특별수사책임자는 선언문이 “그들이 원하는 세계의 모습에 대한 종교적·인종적 신념”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용의자들은 자신들이 증오하는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당국은 이들의 이념과 선언문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 전자기기와 온라인 활동 기록을 분석하며 이들이 어떻게 온라인에서 극단화됐는지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레밀리는 두 사람이 온라인에서 서로 알게 됐다고 확인했다.

LA타임스가 검토한 선언문에서 바스케스는 “사회 붕괴를 위한 전면적인 인종 전쟁”을 주장했으며, 클라크는 자신을 “기독교 생태파시스트”라고 표현했다.
반명예훼손연맹(ADL)은 이 문서가 백인이 비백인 이민자들로 대체되고 있다는 음모론인 ‘대체 이론’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들은 태런트와 버펄로 슈퍼마켓 총격범, 파웨이 유대교 회당 총격범 등 여러 대량살인범의 사상을 계승한다고 주장했다.
2014년 캘리포니아 아일라비스타에서 6명을 살해하고 ‘인셀’ 운동을 주장한 엘리엇 로저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브라이언 레빈 캘리포니아 증오범죄 위원회 의장은 이번 사건이 극단주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모방 현상을 보여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직 뉴욕 경찰관 출신인 레빈 의장은 “이들은 태런트와 다른 극단주의 살인범들을 언급하며 이전 살인범들의 선언문을 이어가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강경 극우 가속주의자들은 사회를 침범하고 타락시킨다고 여기는 집단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폭력과 사회 붕괴를 정당화한다”고 말했다.
또 이 같은 극단주의자들은 증오 대상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공격 대상을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수사 과정에서 연방당국은 세 건의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으며, 두 곳에서 30정이 넘는 총기와 석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권총과 소총, 산탄총, 탄약, 전술 장비, 전자기기 등을 압수했다.
수사당국은 또 용의자들이 나치 상징이 새겨진 전투복 차림으로 BMW 차량 안에서 사건 전후 상황을 촬영한 라이브스트림 영상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반명예훼손연맹에 따르면 사망 장면 영상을 공유하는 한 웹사이트에도 이들이 촬영한 영상이 게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LA타임스는 온라인에 유포 중인 영상의 진위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공개된 영상에는 두 청소년이 BMW X1 차량 안에서 총기를 난사하며 이슬람센터 인근 도로를 이동하고, 최소 한 자루의 소총을 들고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장면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상은 차량 안에서 이들이 숨지는 장면으로 끝난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박성철 기자(sungparkknews@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