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4일, 에인절스 스타디움의 오후 햇살이 내야 잔디 위로 길게 뉘어지고 있었다. 프레스 박스의 센셋은 두 번의 강렬한 눈부심을 기자들에 보여준다.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 빅에이 스타디움 마운드에 리드 데트머가 올랐다. 불과 열흘 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상대로 5와 3분의 2이닝 동안 8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졌던 바로 그 투수가.
하지만 오늘의 데트머는 달랐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8이닝 1피안타 볼넷 0개, 그리고 커리어 최다 14탈삼진. 에인절스는 2-1로 승리하며 텍사스와의 3연전을 스윕으로 마무리했다.

경기 후 인터뷰룸에서 데트머는 담담했다. 항상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오히려 너무 담담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패스트볼 커맨드였어요. 패스트볼을 낮게 꽂아서 슬라이더처럼 보이게 하는 것 — 존을 장악하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단 몇 마디였다. 화려한 수식어도, 흥분도 없었다. 26세라는 나이를 완전 잊게 만든, 커리어 최고의 경기를 마친 직후에도 마치 평범한 하루를 이야기하듯 말했다. 그게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 하루가 오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일리노이주 소도시 노코미스출신의 데트머는 아버지 크리스에게서 야구를 배웠다. 아버지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산하 마이너리그 투수 출신이었다. 아들이 태어나던 1999년, 아버지는 트리플A 멤피스 레드버즈 소속이었다. 야구는 이 가족에게 삶 그 자체였다.
루이빌 대학에서 단일 시즌 167삼진이라는 학교 기록을 세우며 전국구 유망주로 떠오른 데트머는 2020년 드래프트 전체 10순위로 에인절스의 품에 안겼다. 계약금 467만 달러. 기대치는 높았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냉정했다. 2021년 데뷔 후 2022년 노히터라는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3년간은 부침의 연속이었다. 2023~2024년 통산 선발 45경기 ERA 5.30. 결국 2025시즌에는 불펜으로 밀려났다.
재능은 분명했다. 하지만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다.
그리고 2026년, 에인절스는 다시 한번 그에게 선발 기회를 줬다. 커트 스즈키신임 감독의 결정이었다.왜 작년 불펜시절보다 스피드가 떨어지고 슬라이더가 날카롭지 않냐는 평가가 줄을 이었었다.
스즈키 감독과 데트머의 인연은 깊다. 2021년 데트머가 빅리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스즈키는 에인절스의 주전 포수였다. 노련한 포수가 신인 좌완의 공을 받으며 빅리그의 세계를 가르쳐줬다. 2022년, 데트머가 노히터를 던지던 날 스즈키는 코로나19 부상자 명단에 있었다. 역사적인 그날을 함께하지 못한 채 유니폼을 벗었다.
그 스즈키가 이제는 감독으로서 더그아웃에서 데트머를 바라보고 있다.
오늘 경기 후 스즈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 이후로는 그냥 빈티지 데트머였어요.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고, 필요할 때 슬라이더와 커브로 제압했습니다. 패스트볼에 확실히 좋은 생동감이 있었어요.”
감독은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노히터는 물론 특별하죠. 하지만 오늘이 더 인상적이었던 건 삼진이에요. 인플레이 타구 자체가 거의 없었고, 100구도 안 되는 투구수로 14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웠습니다. 빠르게 이닝을 처리했다는 뜻이니까요. 아마 그의 커리어 최고의 선발 등판이었을 겁니다.”

2년간 포수로서 그의 공을 받았던 사람이 내린 평가였다. 무게가 달랐다.
데트머 본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오늘과 2022년 노히터, 어느 쪽이 더 나은 경기였느냐고.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노히터는 노히터예요. 구위만 따지면 오늘이 아마 최고였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노히터를 뛰어넘는 건 없습니다.”
커리어 최다 14탈삼진을 기록하는 동안 의식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냥 다음 타자를 어떻게 잡을까, 그뿐이었습니다. 과정에 충실하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것. 솔직히 별거 없어요.”
그 담백함이 오늘의 데트머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언어였다.
오늘 에인절스 타선은 조용했다. 안타 4개. 3회 마이크 트라웃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든 뒤 8회까지 침묵했다. 9회, 텍사스의 에러 하나가 균형을 흔들었다. 비자책점으로 올라간 결승점이었지만, 야구는 그런 것이다. 데트머도 그 점은 인정했다.
“인플레이 타구가 되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게 야구죠.”
마무리 샘 바크맨이 9회를 막아냈고, 에인절스는 2-1 승리로 텍사스 3연전 스윕을 완성했다.
빅에이 스타디움을 나서며 데트머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몇 경기는 분명히 아쉬웠죠. 그냥 잊고 나아가야 해요. 볼넷도 없이, 큰 장타도 허용하지 않고 8이닝을 버텨낸 건 정말 큰 해방감이었습니다.”
해방감. 그 단어가 맞다. 오늘 빅에이의 마운드 위에서, 리드 데트머는 오랫동안 자신을 짓눌러온 무언가를 훌훌 털어낸 것처럼 보였다.
스즈키 감독이 포수 마스크 뒤에서 지켜보지 못했던 그 노히터의 날처럼, 오늘 더그아웃에서 바라본 14탈삼진의 밤은 둘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 하루가 될 것이다.
에인절스는 다음 시리즈 디트로이트로 향하고, 기자도 동행한다.
<석승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