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주에 자리한 디트로이트는 북쪽으로 클레어 호수, 남쪽으로는 에리 호를 품고 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디트로이트 강 너머로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윈저 시가 손에 잡힐 듯 마주 보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심장, 흑인 음악의 발원지, 그리고 야구의 도시. 그러나 이 도시가 품고 있는 또 하나의 보물이 있다. 디트로이트 인스티튜트 오브 아츠, 이 미술관 안에는 멕시코 근대사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가 미국의 대공황 당시 무려 11개월을 이곳에 머물며 완성한, 93년의 세월을 견뎌온 거대한 벽화가 관람객을 압도한다. 시내에서 무료로 운행하는 큐라인을 타면 다운타운에서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다.

야간 경기가 열리는 코메리카 파크에 선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오후 3시가 막 넘어선 시각이었다. 그라운드를 가로지르는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시즌까지 에인절스의 마운드 끝을 지키던 클로저, 켄리 젠슨. 이제는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은 그가 에인절스의 조 아델, 그리고 전날 그랜드슬램으로 팀을 구해냈던 본 그리섬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디트로이트는 지금 에이스 타릭 스커볼과 베테랑 저스틴 버랜더의 부상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시즌을 보내고 있다. 팀 성적 부진의 가장 큰 이유다.
경기 전, 에인절스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커트 스즈키 감독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놀란 샤누엘의 종아리 부상으로 인해 닉 마드리갈을 이날 콜업한 스즈키 감독은 “그는 어디서든 뛸 수 있다. 컨택 능력과 유틸리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시즌 내내 왼쪽 어깨 수술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던 마드리갈에게는 힘겨운 재활 끝에 찾아온 기회였다. “많은 힘든 밤들이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그의 첫마디가 긴 여정을 말해줬다.

그러나 이날 밤 에인절스의 야망은 코메리카 파크의 조명 아래 조용히 꺼져갔다. 팀 안타 2개. 득점 0. 디트로이트에 4대 0 완봉패를 당했다.
마운드에서 에인절스를 침묵시킨 주인공 중 하나가 드류 앤더슨이었다. 3이닝을 무안타 무실점 3탈삼진으로 막아내며 승리투수가 된 그의 이름 앞에는 낯설지 않은 이력이 붙어 있다. 필리스, 화이트삭스, 레인저스를 거친 후 일본 히로시마 도요 카프, 그리고 한국 KBO의 SSG 랜더스에서 2시즌을 보내며 23승을 쌓은 투수. KBO 무대에서 갈고닦은 체인지업과 강속구로 오늘 에인절스를 봉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디트로이트 구단 산하 더블A 이리 시울브스에는 한국인 투수 고우석이 콜업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LG 트윈스 시절 한 시즌 최다 42세이브를 기록한 KBO의 스타 마무리. 친정팀 LG가 단장을 직접 미국에 보내 복귀를 설득했지만 고우석은 고개를 저었다. “MLB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앤더슨이 KBO를 발판 삼아 빅리그 승리투수가 된 이 날 밤, 고우석의 선택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한때 이 구장의 마운드에 섰던 또 다른 이름도 떠오른다. 켄타 마에다. 다저스와 미네소타 트윈스를 거쳐 디트로이트와 2년 2,400만 달러 계약을 맺었지만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2025년 방출된 일본의 에이스. 그는 올해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유니폼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디트로이트가 마에다를 내보낸 자리에 지금은 KBO 출신 앤더슨이 서 있다.

코메리카 파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자동차의 도시, 음악의 도시, 그리고 오늘 하루만큼은 KBO 야구가 조용히 흐른 도시.
<석승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