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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최전선에 있는 션 베이커(Sean Baker·54) 감독이 미국 주류 영화계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2일LA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베이커 감독이 연출·각본을 맡은 영화 ‘아노라’가 작품·감독·각본·편집·여우주연(마이키 매디슨) 부문 등 오스카 5개를 들어올렸다.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아카데미 작품·감독상을 받아내면서 델버트 만, 봉준호에 이어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감독상을 동시에 받은 세 번째 감독이 됐다.
이날 베이커 감독은 여우주연상을 뺀 나머지 네 개 상을 받기 위해 네 차례 무대에 올랐다. 감독상을 받았을 때는 “우리가 영화와 사랑에 빠진 장소가 바로 극장”이라며 “영화 산업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극장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했고, 작품상을 받았을 땐 “우린 이 영화를 600만 달러로 만들었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독립영화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독립영화가 이 세상에 더 필요하다. 지금 이 결과가 바로 그 증거”라고 했다.
[97회 아카데미]독립영화 상징 션 베이커, 오스카 장악하다
‘아노라’는 뉴욕에서 스트리퍼로 일하는 아노라가 러시아 재벌 2세 이반을 고객으로 맞게 되고, 철저한 금전 관계로 맺어진 섹스 파트너를 넘어 급기야 그와 결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베이커 감독은 ‘스타렛'(2012) ‘탠저린'(2015)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레드 로켓'(2021) 등에서 성노동자·성소수자·이민자·하층민 등 소위 비주류 인간들의 삶과 알게 모르게 그들을 타자화·대상화하는 개인적·사회적 억압을 그려내왔다. ‘아노라’는 베이커 감독의 이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완결판이자 정점인 영화로 평가 받았다.
베이커 감독은 현재 미국 독립영화를 상징하는 작가이자 연출가이면서 프로듀서다. 2000년 ‘포 레터 워드’로 데뷔한 뒤 ‘아노라’까지 장편영화 8편을 초저예산으로 만들면서 주류 영화계와 상반된 방식의 스토리, 촬영 방식 등으로 주목 받았다. 아이폰 촬영, 자연광 활용, 비전문 배우 기용 등을 하는 동시에 100~200만 달러 예산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탠저린’ 제작비는 10만 달러에 불과했고, ‘아노라’에 쓴 600만 달러가 베이커 감독이 쓴 최대 제작비였다. 모든 영화 제작과 편집을 직접 맡는 것은 물론 종종 촬영까지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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