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 28일 백악관에서 열렸던 트럼프와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무례와 고성, 설전이 오가며 약 40분 만에 파국을 맞았다. 막장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불케 했다. 트럼프는 이내 우크라이나에 군사 원조를 전면 중지할 것을 지시하고 젤렌스키는 결국 백기투항하는 처지가 되었다.
회담 당시 트럼프가 젤렌스키에게 여러 번이나 ‘당신에게는 내놓을 카드가 없다’며 면박 주는 장면은 우크라이나가 처한 안보 현실을 뼈저리게 보여줬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채 독립한 나라였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안보 약속만을 믿고 핵과 영토 등을 모두 내주었다가 국제사회 ‘힘의 질서’에 휘둘려 힘없이 물러나야만 하는 신세가 된 거다.
이같은 종전협상을 둘러싼 우크라이나 패싱과 젤렌스키 굴욕은 우릴 되돌아보게 한다. 불과 100년 전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일본으로부터 조선이 받아야 했던 치욕스러운 역사나 1953년의 한국전쟁 휴전 협정 과정이 닮아서다.
한국전(战)의 조속한 종결을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는 한국에 원치 않는 조건으로 조기 휴전을 압박했다. 하지만 휴전을 반대하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과 그는 회담장에서 서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험악한 사태까지 벌어지고 결국 한국은 패싱된 채 미국 주도의 UN군과 중국, 북한 간에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그나마 이승만은 반공포로석방이라는 승부사적 조치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냈지만 말이댜.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여진족 후예 만주족의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의 두 번째 황제 홍타이지는 약소국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오만함을 지닌 자였다. 그런 그가 후금을 대청국이라 명칭을 바꾸고 당시 막강했던 명나라와의 전쟁을 치르던 중 조선 정벌에 나섰다. 1636년 병자호란이다.
변방의 오랑캐라 폄하하던 청나라 침략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45일간 버텼지만 끝내 항복하고 삼전도에서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땅에 머리를 아홉 번 조아리는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를 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조선은 청나라의 신하가 되었고 항복의 대가로 배상금과 함께 세자와 조선 백성 20만명을 청에 인질로 보냈다. 조선 최대 치욕의 역사였다.
한 사학자는 병자호란이 홍타이지가 영토 정복이나 약탈을 위한 것보다는 단지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벌인 개인적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행동들은 얼핏 그를 연상시키고 해당 국들에게는 정묘호란 당시 조선이 느꼈을 무력함과 울분, 공포, 절망 같은 느낌을 준다.
덴마크령인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에 대한 영토 야욕 그리고 관세를 무기로 세계 여러 나라들을 압박하는 것이나 우크라이나 종전협상도 당사자는 제쳐두고 침략자와 협상하려는 형국 등이 그렇치만 예나 지금이나 역사적 결정은 강자의 의지대로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이번 트럼프-젤렌스키 정상회담 파국이 보여준 메시지는 ‘동맹의 조건’이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무리 뜨거운 동맹이라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냉정한 현실 말이다.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회고록에서 1기 트럼프와의 불화 후 교황에게서 들었다는 충고가 ‘숙이고 숙이고 숙여라. 그러나 부러질 정도로 숙이진 마라’였다는데 과연 그 정도로 통할는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PTSD’가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가 아닌 ‘President Trump Stress Disorder’라는 신종 용어가 괜한 말이 아닌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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