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붉은 별, 형혹성(熒惑星)이 심성(心星) 위에 머무르자 진시황은 몹시 불안해 했다. 붉은 별, 형혹성은 지금의 화성이고 심성은 이와 대립하는 또 다른 붉게 빛나는 별로 바로 천자나 임금을 의미했다. 해서 형혹성이 심성에 근접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제왕의 운명에 대한 하늘의 불길한 징조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해서 진시황은 이 불길한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신선의 약을 찾아 동방으로 사람들을 보내는 한편, 그 지역의 백성들을 모조리 죽이고 자신을 비난하는 글귀가 나타났다는 산은 모두 깎아 없애버렸다.
그즈음 로마에서는 조점관(鳥占官:Augur)들이 새들의 비행을 관찰하고 있었다. 독수리가 오른쪽으로 날아가면 길조, 왼쪽으로 날아가면 흉조,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세 번이면 전쟁, 다섯 번이면 평화. 이들의 해석에 따라 원로원의 회의가 연기되는가 하면 군대를 파병하곤 했다. 시이저가 어느 날 아침 ‘새들이 흉조를 보인다’며 원로원에 가지말라는 점술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나섰다가 피살되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이렇듯 고대인들은 별의 이동이나 동물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땅의 냄새, 바람결의 미묘한 변화까지도 징조로 읽었다. 한겨울에 뱀이 기어나오고, 까마귀가 낮에 울고, 말이 한밤중에 울부짖으면 왕조가 흔들린다거나 지진은 땅의 신이 노한 것이며 일식은 하늘의 용이 태양을 삼키는 것이라는 등 자연 현상 속에 숨어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신들의 메시지를 읽어냈다.
말하자면 이들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수천 년간 축적된 관찰 기록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논리와 일관성을 가지고 정교한 체계를 갖춘 예측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런 징조들은 정치적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헌데 이는 오늘날에도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시간이 흐르고 과학이 발달해 AI가 논문을 쓰고, 알고리즘이 세상의 흐름을 예측하려 해도 고대인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듯 우리는 데이터 속에서 징조를 찾으러 애쓰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립스틱 지수, 햄버거 지수, AI 인덱스 같은 수많은 지표로 세상을 읽어낸다. 경기가 침체되면 값싼 사치를 택한다는 ‘립스틱 지수’, 야간 회의가 많아질수록 피자 배달이 늘어난다는 ‘펜타곤 피자 지수’처럼 현대의 징조는 이제 통계와 소비 패턴으로 나타난다.
소셜미디어 X에는 ‘펜타곤 피자 리포트’라는 계정이 있다. 피자 주문량으로 전쟁을 예고하는 지표로 잘 알려져 있다. 헌데 실제로 지난 13일 ‘펜타곤 인근 모든 피자 가게 주문량 급증’ 이라는 글이 올라온 지 한 시간 뒤 이스라엘의 테헤란 공습 뉴스가 시작되었고 일주일 뒤인 20일 미국의 이란 핵 시설 폭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뿐만이 아니라 파나마 침공 전이나 걸프전 전야 그리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전야에도 그랬다니 이것들이 ‘과연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현대판 형혹성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거다.
이처럼 고대의 점술사들이 새의 비행에서 국가의 운명을 읽어냈듯이 현대의 분석가들은 피자 주문량에서조차 국제 정세를 예측하려 한다. 이는 비록 방법은 달라졌지만, 미래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궁금증과 불안은 여전하다는 증거인 셈이다.
어쩌면 과학이 발달할 수록 우리는 더 본능적으로 징조나 신호를 믿고 의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몸 속DNA에 새겨진대로 오래 전부터 내려온 인간의 방식에 따라 말이다.
해서 우연이든 징조든 일어난 일들을 놓고 데이터보다는 직감을 좇게되면서 어느 순간 우리식 입맛에 맞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경향으로 기울기 마련인가 보다.
어제나 오늘이나 자연은 그저 우주의 철리에 따라 움직일 뿐인데도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앞으로의 일을 알아내려고 애를 썼던 것은 삶에서 오는 불안을 달래고 위로를 받으려는 나약함 때문이었을 터. 그리고 이는 과학이 발달했다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니 ‘古如是今如是 (고여시금여시)’ 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