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체류자들의 금융 거래를 겨냥한 강경 조치에 나섰다. 은행 고객의 시민권 및 체류 신분 확인을 강화하고, 불법 이민과 연관된 의심 금융 거래를 집중 감시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19일 서명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금융 규제 강화 수준을 넘어,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 정책이 은행 시스템과 대출 시장까지 본격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악관은 이날 공개한 설명자료에서 이번 행정명령의 목적이 “미국 금융 시스템을 불법 활동으로부터 보호하고 고객 신원 확인 요건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명령에 따라 재무부는 은행과 금융기관들에 대해 불법 이민과 연관된 자금세탁 및 의심 거래 유형을 정리한 공식 경고 지침(red flags)을 발령해야 한다.
또 연방 금융 규제기관들은 은행비밀법(Bank Secrecy Act) 규정 개정을 추진해 고객 실사(Customer Due Diligence) 의무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 은행들이 고객에게 추가 신원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 확대도 포함된다.
특히 외국 영사관 신분증(consular identification cards)이 미국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위험성도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이는 일부 불법체류자들이 멕시코 영사관 발급 신분증(Matícula Consular) 등을 이용해 은행 계좌를 개설해온 현실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노동허가가 없는 이민자들에게 대출이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신용 리스크를 금융기관들이 보다 엄격히 관리하도록 새 가이드라인 마련을 지시했다.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에는 대출 심사 과정에서 추방 가능성이나 소득 상실 위험 등을 상환 능력 평가 기준에 반영할 수 있도록 규정 수정 검토를 요구했다.
이번 행정명령은 즉각적인 법 시행이 아니라 향후 90일 동안 재무부와 금융 규제기관들이 세부 규정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사실상 시민권 및 체류 신분 검증이 대폭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다른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해당 명령은 연방준비제도(Fed)에 대해 비은행 금융회사(nonbanks)와 보험 미가입 예금기관들의 연준 결제 시스템 접근 확대 가능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다.
백악관은 이를 금융 혁신과 경쟁 촉진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동시에 금융 시스템 전반에 대한 연방 정부의 통제력 확대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은행협회(ABA)의 롭 니콜스 회장 겸 CEO는 성명을 통해 “은행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사업자는 동일한 수준의 엄격한 규제와 소비자 보호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혁신은 중요하지만 현재의 안전하고 건전한 금융 시스템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또 불법 금융 활동 차단 관련 행정명령에 대해서는 “미국 은행들은 매일 악의적 행위자들의 금융 시스템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행정부 및 사법당국과 협력해 금융 방어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향후 은행 계좌 개설과 대출 심사 과정에서 시민권 및 체류 신분 확인 절차가 한층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ITIN(개인납세자번호)만으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해온 일부 이민자 사회에는 적지 않은 충격이 예상된다.
<김상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