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먼 퇴역 장교 프랭크는 레스토랑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인 다나에게 탱고를 청한다. 한 번도 춰 본 적이 없다며 망설이는 그녀에게 춤의 비결을 일러 준다. ‘발이 엉키면 엉키는대로 그대로 추면 되요. 그게 탱고’라고.
두 사람은 음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가 어둠 속에서 아는 것은 상대의 체온과 호흡, 그리고 자기 발이 닿을 다음 자리뿐이다. 실수할까 조바심 내던 여인은 어느새 춤을 즐긴다. 영화 ‘여인의 향기’ 한 장면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저마다 나름의 박자를 익히고 앞날을 계획하지만, 인생은 좀처럼 악보대로 연주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발을 맞추다 발등을 밟기도 하고, 끝까지 함께 가리라 믿었던 이가 불쑥 손을 놓기도 한다. 한 걸음 다가섰다가 두 걸음 물러서고,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몸을 돌려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춤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삶이란 한 번도 발이 엉키지 않는 데 있지 않고, 엉킨 발로도 다음 스텝을 찾아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해서 탱고가 삶과 닮았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이 비유를 문학으로 표현한 작가가 있다. 그리스 고전학자이자, 시인이며, 수필가인 앤 카슨(Anne Carson). 그녀는 ‘남편의 아름다움’이란 책에 ‘29개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거짓말을 잘했으며, 어떻게 떠나갔는지를 29개의 춤으로 풀어냈다. 그 탱고들은 결혼 생활의 장면들이면서 사랑이라는 춤에 던지는 29개의 질문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춤이 반드시 행복한 춤은 아니며, 아름다운 사랑이 반드시 진실한 사랑인 것도 아니라는.
그녀의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또 다른 작품 ‘녹스(Nox)’는 아코디언처럼 접히는 책이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대신 길게 이어진 종이를 펼치면, 접혀 있던 페이지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일찍 세상을 떠난 오빠를 기억하며 쓴 이 책은 단순한 추모의 기록이라기보다 온전히 알 수 없었던 사람에게 뒤늦게 말을 건네는 모습에 가깝다.

그 안에는 오려 붙인 사진과 편지의 조각들, 그리고 로마 시인이 형제의 무덤 앞에 바친 시가 들어 있다. 읽는 일은 곧 펼치는 일이고, 펼치면 길고 긴 슬픔이 나타난다. 다 읽고 나서 접으면 다시 작은 상자 속으로 돌아간다.
아코디언은 주름이 펴지고 접힐 때, 숨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비로소 음이 생기고 노래를 만든다. 오빠를 잃은 누이에게 죽음 이후의 시간도 그렇게 펼쳐졌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젊은 날에는 세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듯하다. 하고 싶은 일도, 가야 할 곳도 많고, 사랑과 우정과 꿈이 삶의 폭을 넓혀 간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이 접힌다. 이별이 찾아오고, 익숙했던 일상이 사라지고, 한때 당연했던 것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접힌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접힌 아코디언이 다음 연주를 기다리는 것처럼.
탱고의 엉킨 스텝이 삶의 ‘움직임’을 말해 준다면, 아코디언의 접힌 주름은 삶의 ‘깊이와 호흡’을 말해 준다. 얼핏 다른 듯하지만 둘은 같은 비밀을 품고 있다. 움직임에는 언제나 어긋남이 있고, 소리에는 언제나 숨 쉴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
앤 카슨이 문학의 형식을 끊임없이 흔드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와 산문, 고전과 현대, 학문과 감정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든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철학을 오늘의 사랑과 실의 속으로 불러오고, 한 권의 책을 춤처럼 짜거나, 접었다 펼치는 악기처럼 빚어낸다. 형식이 달라지면 삶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듯.
며칠 전 그녀에게 올해 2026년 노벨 문학상이 주어졌다. 문학은 정해진 틀 안에서만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경계를 넘고 익숙한 문법을 벗어나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생각을 뒤집을 때, 새로운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기도 한다.
삶의 아름다움 또한 한 번도 엉키거나 접히지 않는 데 있지 않을 터. 그런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용기일 것이다. 엉킨 발로도 내딛는 용기, 접힌 날들 사이에서 숨을 고르고 펼쳐진 날들 앞에서 손을 내미는 용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