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국내선 항공편 이용이 이민단속의 새로운 ‘덫’으로 떠오르고 있다.
항공보안을 위해 수집해온 TSA의 국내선 승객정보가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이민단속에 활용되면서 비자 체류기간을 넘겼거나 이민 신분에 문제가 있는 외국인들이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려다 공항에서 체포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항공사들이 출발에 앞서 TSA에 제공하는 승객정보를 ICE의 이민단속 데이터와 대조할 수 있어, 단속요원들이 대상자의 항공편과 이동 시점을 미리 파악해 공항에서 기다렸다 체포하는 방식까지 등장했다.
로이터가 ICE 내부 자료를 입수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이후 올해 2월까지 TSA는 3만1,000명 이상의 여행자 기록을 이민단속 목적으로 ICE에 제공했다.
이 정보는 800명 이상의 ICE 체포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가운데 정확히 몇 명이 공항에서 체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에는 TSA의 ‘Secure Flight’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당초 테러 용의자 등 항공보안 위협을 사전에 찾아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항공사가 승객의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 등의 정보를 TSA에 전송하면 정부 감시목록 등과 대조하는 방식이다.
연방 규정에 따르면 출발 72시간 이전에 예약한 승객의 경우 항공사는 늦어도 출발 72시간 전까지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 등을 확보해야 하며 관련 Secure Flight 승객정보를 TSA에 전자적으로 전송해야 한다. 출발 72시간 이내 예약한 승객은 예약 당시 정보를 수집한다.
따라서 최근 일부에서 알려진 것처럼 TSA가 올해부터 갑자기 국내선 승객정보를 72시간 전에 받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이 시스템을 통해 확보된 정보를 이민단속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ABC뉴스는 지난달 비자 체류기간을 넘긴 외국인 등을 공항에서 체포하는 방식이 새로운 이민단속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관련 체포가 캘리포니아에서 버지니아까지 최소 9개 주에서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ABC가 입수한 자료에서는 이 방식으로 최소 27명이 공항에서 체포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달 비영리 감시단체 아메리칸 오버사이트가 정보공개법을 통해 TSA와 ICE 사이의 정보공유 협약을 공개하면서 두 기관의 협력 방식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16페이지 분량의 협약은 양 기관이 국가안보와 교통안전뿐 아니라 “법 집행, 이민 및 국경 관리”를 위해 합의된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ABC뉴스에 따르면 이 협약은 TSA의 Secure Flight 관련 규정을 정보공유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공항 단속 대상도 최종 추방명령을 받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ABC뉴스는 이민 변호사들의 말을 인용해 합법적으로 미국에 입국한 뒤 취업허가증을 가지고 있거나 영주권 신청 등 이민절차가 진행 중인 외국인들도 공항에서 체포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이민 변호사들은 일부 고객들에게 국내선 항공여행에 따른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아르헨티나 국적의 30세 여성이 필라델피아에서 캔자스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월드컵 경기를 보러 가려다 필라델피아 공항에서 ICE에 체포된 사례도 알려졌다.
이 여성은 관광비자로 합법 입국한 뒤 신분변경을 신청하고 취업허가를 받은 상태였지만 DHS는 허가된 체류기간을 넘겼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이민판사가 1만 달러 보석을 허가했다.
이 같은 단속 확대는 국내선 항공여행에는 일반적으로 출입국심사가 없다는 기존 인식도 흔들고 있다.
비행기가 미국 영토를 벗어나지 않더라도 항공권을 예약하고 Secure Flight 시스템에 승객정보가 입력되는 순간 해당 정보가 이민당국의 데이터와 대조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비자 오버스테이뿐 아니라 체류신분 변경이나 영주권·망명 등 이민절차가 진행 중인 외국인들에게는 국내선 공항 역시 더 이상 이민단속과 무관한 공간으로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김상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