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원정 로드트립을 3승 3패, 5할의 성적으로 마무리하고 돌아온 에인절스가 휴식도 없이 바로 홈구장으로 향했다. 텍사스 원정에서 3연승을 거두며 좋은 기세로 출발했지만, 디트로이트와 탬파베이를 거치며 결국 5할에 머물렀다.
프레스 박스에 들어서자 미디어 카페테리아의 미스 조우디가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오늘 메뉴는 멕시칸, 내일은 하와이안이라고 알려 주시는 그녀는 언제나 친절하고 뭐 하나라도 더 챙겨 주시려는 분이다. 에인절스 스타디움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나눠 주시는 분들이 많아, 이 곳에 오면 매번 행복 바이러스를 얻어 간다.
클럽하우스는 평소처럼 오후 2시 30분에 문을 열었고, 들어서자마자 라틴 음악이 크게 울려 퍼졌다.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오늘의 상대 콜로라도 로키스 클럽하우스는 오후 3시 40분 오픈 예정이었으나, 팀 미팅이 길어지면서 4시에 문을 열었다. 매번 그날의 로스터를 받아보거나 에인절스에도 일본인 투수가 있지만 상대팀의 클럽하우스에 들어갈 때면 일본 선수가 있는 팀들을 많이 접한다. 콜로라도에도 다저스 게임에서 오타니에 선제 홈런을 맞기는 했지만 스가노 토모유키라는 투수가 있다. 이런 일본 선수를 접하는 기회가 많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생긴다. 부러움은 또 다른 하나다.

경기 시작 30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라인업이 프레스 박스에 도착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탬파베이 2차전 홈 대시 중 등을 부딪혀 두통 증상을 보인 1번 타자 재크 네토가 결장하고, 호르헤 솔레어가 1번 타순으로 올라섰다.
“엘 라요(El Rayo)”, 번개를 불러오다
탬파베이와의 원정에서 만루 상황 좌익수 펜스를 넘는 홈런을 강탈하며 팀을 구했던 에인절스 외야수 호세 시리(José Siri). 별명 “엘 라요”— 스페인어로 “번개”를 뜻하는 그 이름처럼, 번개 모양 귀걸이와 목걸이를 항상 몸에 걸치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30세 외야수는 오늘 에인절스 스타디움 홈구장에서도 번개 같은 한 방을 터뜨렸다.
3회말, 만루 상황. 콜로라도 선발 카일 프리랜드(Kyle Freeland)의 85마일 커터를 시리의 방망이가 정확히 잡아냈다. 타구는 좌익수 쪽 에인절스 불펜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 그랜드슬램, 4타점이 한 번에 터졌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로키스 워런 쉐퍼 감독은 프리랜드에 대해 “그는 진짜 승부사,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면 잘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 그 자신감은 시리의 배트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올 시즌 1승 6패, ERA 8.08로 고전하고 있는 프리랜드는 오늘도 91구를 던지며 버텼지만 시리의 그랜드슬램이 경기의 흐름을 바꿨다.
소리아노, 모든 것을 쏟아붓다
에인절스 선발 호세 소리아노(José Soriano)는 오늘도 볼넷 난발과 커맨드 난조로 고전했다. 특히 싱커가 높게 뜨며 타자들에게 공략당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포심 패스트볼도 높낮이가 들쭉날쭉해지자 후반 브레이킹볼과 스플리터로 버티며 100구를 넘겼다.
포스트게임 인터뷰에서 소리아노는 “볼넷이 많았던 건 인정한다”며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내 스타일, 팀을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메카닉 문제일 수 있어 투구 코치와 영상 분석을 통해 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커트 스즈키 감독(쥬우크)은 “볼넷이 많은 건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100구를 넘기며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라고 소리아노를 두둔했다.
8회의 악몽 — 페르민 5실점 붕괴
에인절스 불펜이 로드트립 누적 피로를 이기지 못했다. 8회초 등판한 호세 페르민이 5실점을 허용하며 6-8로 역전을 허용했다. 스즈키 감독은 “이기는 포지션에 있었는데 마무리 못 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에인절스는 8회말 2점을 만회해 8-8 동점을 만들었지만, 9회초 다시 1점을 내주며 최종 8-9, 역전패를 당했다.
경기 종료 장면에서는 판정 논란도 있었다. 스즈키 감독은 “우리 의견이 있고, 심판 의견이 있다. 중요한 건 심판의 의견뿐이다. 콜은 콜이다”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시리, 이틀간의 빛
패배 속에서도 호세 시리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탬파베이전 만루 홈런 수비 강탈에 이어 오늘 그랜드슬램까지 — 이틀간 공수 양면에서 팀을 이끈 진정한 ‘번개’였다.
스즈키 감독도 “그랜드슬램에 홈런 도둑 수비까지, 이틀간 정말 즐겁고 생산적인 시간이었다. 합류 이후 계속 잘 해주고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미니카공화국 사바나 그란데 데 보야 출신의 시리는 작년 뉴욕 메츠 시절 왼쪽 경골 골절로 5개월을 결장하며 긴 재활의 터널을 지났다. 올 시즌 5월 16일 에인절스에 합류한 그는, 짧은 시간 안에 팀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번개는 오늘도 쳤다. 다만 폭풍이 조금 더 강했을 뿐이다.
<석승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