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간 이어진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폭발적 성장 시대가 저물고, 인공지능(AI) 시대의 승자는 엔비디아 등 소수 반도체 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막대한 AI 투자 경쟁이 플랫폼 기업들의 현금흐름을 약화시키는 반면, 핵심 하드웨어 공급업체들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1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의 기술 투자자 제임스 앤더슨은 구글·메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벌이는 수조 달러 규모의 AI 투자 경쟁의 과실이 엔비디아·TSMC·ASML 등 소수 반도체·장비 기업들에 집중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플랫폼 기업들의 기반이 붕괴됐다”며 “낮은 자본지출과 높은 현금흐름 구조로 돌아갈 뚜렷한 경로가 없다”고 말했다.
앤더슨은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알파벳·메타·엔비디아·테슬라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 중심의 시장 구조 역시 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AI 주도권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면서 기존 플랫폼 기업들의 사업 구조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모건스탠리는 빅테크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이 2024~2027년 데이터센터 구축에만 약 2조 달러를 쏟아부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월가의 투자 구도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투자자들이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기업보다 반도체·공급망 기업들로 몰리면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는 최근 한 달간 18%, 올해 들어서는 57% 상승했다.
앤더슨은 AI 기업들 간 경쟁과 달리 하드웨어 공급망은 “놀라울 정도로 집중돼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전 세계가 TSMC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시장이 여전히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독점 구조를 피해 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일론 머스크가 몇 년 안에 따라잡겠다고 말하고 있고 인텔 부활 시도도 있지만, 이를 위해선 엄청난 기술력과 끈기, 자원, 지식재산권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AI 경쟁이 둔화될 경우 현재의 공급 부족이 빠르게 공급 과잉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앤더슨은 현재 AI 칩 공급 부족 현상이 시장 예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반도체 경기 순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일”이라면서도 “그 순환이 얼마나 심각할지에 대해서는 시장이 의외로 긍정적인 놀라움을 경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가격 결정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그는 “가격 결정력이란 상대방이 ‘안 된다’고 말할 때까지 계속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이라며 “지금은 아무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앤더슨은 올해 기업공개(IPO) 가능성이 거론되는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에 대한 투자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문화적인 이유 때문에 현재로선 오픈AI보다 앤트로픽 쪽 가능성이 더 크다”며 “AI 개발에서는 기업 문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거 자산운용사 베일리기포드의 대표 펀드매니저였던 앤더슨은 현재 이탈리아 아녤리 가문 자산 일부를 운용하는 링고토 이노베이션 스트래티지를 이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