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의 돌을 굴려 가는 듯이 언덕에 올라왔나 보면 또 다른 내리막이 보이고, 끊임없는 내리막인가 하면 또 올라와 있고. 시즌 초반 에인절스의 흐름이란 꼭 그런 것 같다.
오늘 덕아웃 사전 인터뷰에서는 무거운 소식들이 먼저 나왔다. 에인절스의 베일에 가려진 좌완 선발 기쿠치 유세이에 관해 커트 스즈키 감독이 입을 열었다. 3~4주의 재활에 들어갔지만 복귀 시점은 아직 미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 클럽하우스에 입성했던 소세도의 네임택은 오늘 사라져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잔인함을 다시 한번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오늘 시카고의 선발 에릭 페디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선수이다. 2023년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그해 30경기 선발 등판에서 20승 6패 평균자책점 2.00, 209탈삼진을 기록하며 KBO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외국인 선수 최초의 기록이었으며, KBO 역사상 네 번째에 해당하는 위업이었다. 시즌 후 최동원상과 KBO MVP를 동시에 품에 안았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한 우완투수가 한국에서 완전히 다른 선수로 거듭난 사례였다. 그 페디가 오늘 밤 에인절스 타선을 상대로 마운드에 올랐다.

에인절스의 선발은 좌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태어나고 자란 샘 알더게리가 올라왔다. 1회부터 불안한 출발이었다. 선제 안타에 이어 볼넷을 허용하며 컨트롤 난조를 이뤘다. 4심과 체인지업의 단조로운 조합, 그리고 슬라이더 였지만 그 제구가 문제였다. 그러나 1회를 어떻게든 2실점으로 버텨낸 것이 오늘 경기의 시작이었다. 작년 이 시점과 다를 바 없이, 선제점을 헌납하며 경기를 시작하는 에인절스의 답답한 패턴이 또 반복되는 듯했다.
그러나 에인절스는 1회 말에 즉각 응답했다. 마이크 트라웃이 367피트 솔로홈런으로 반격의 포문을 열었다. 뒤이어 호르헤 솔러가 410피트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1회에만 두 방의 아치로 순식간에 동점을 만들었다. 2-2. 에인절 스타디움이 깨어났다.
알더게리는 그 이후 달라졌다. 1이닝 위기를 넘긴 뒤 패스트볼 커맨드를 되찾으며 체인지업을 효과적으로 섞었다. 알더게리 본인도 담담하게 말했다. “좀 더 일관성을 가지려고 했어요. 삼진에 집중하지 않고, 그냥 아웃카운트를 잡자는 마음으로 던졌습니다.” 만루 위기에서 마운드를 찾은 매덕스 코치의 메시지는 간결했다. 존을 공격하고, 침착하게, 한 투구씩.
5회,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슬럼프 중인 자크 네토가 410피트 솔로홈런으로 역전을 이끌었다. 곧이어 놀란 샤누엘의 우전 2루타로 트라웃이 홈을 밟으며 4-2. 에인절스가 리드를 잡았다.

위기는 7회에 찾아왔다. 메이드로스의 솔로홈런으로 화이트삭스가 4-3으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불펜에서 등판한 라이언 제퍼잔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경기 후 이렇게 말했다. “저한테는 항상 백포켓에 꺼낼 게 있어요. 4가지 구종을 가지고, 상황에 맞게 꺼내 씁니다. 역경을 이겨냈고, 반대편에 있지 않아서 좋았어요.” 오늘 첫 세이브를 따낸 제퍼잔은 지난주 화이트삭스에 스윕 당한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이 컸어요. 내일 시리즈도 가져가고 싶습니다.”
커트 스즈키 감독은 경기 후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쉽지 않았어요. 그들은 좋은 야구를 하고 있거든요. 항상 압박을 가해오죠. 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도전에 응했고,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버텨냈습니다. 멋졌어요.” 트라웃에 대해서는 “홈런, 수비, 주루까지. 마이크가 건강하게 뛰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습니다”라며 웃었다.

시지프스의 돌은 오늘 또 언덕 위에 있다.
내일 3차전, 에인절스가 이 시리즈를 가져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석승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