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패배를 기록한 어제의 경기를 뒤로하고, 오늘 다시 2차전을 준비하는 에인절스 클럽하우스에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들어갔다. 에인절스의 선발 로테이션으로 역할을 하던 잭 코하노위츠가 인터뷰에 응하면서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어 토미 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25세 젊은 우완이 시즌 중 맞닥뜨린 냉혹한 현실이었다.
에인절스의 경기 전 연습을 지켜보다가, 어제 어부지리로 승리를 챙긴 휴스턴 클럽하우스의 분위기가 궁금해졌다.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갔다.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가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알투베와 현재 아메리칸리그 홈런 선두(22개)를 달리고 있는 요르단 알바레즈가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각자 자리에서 개별 인터뷰에 응하는 선수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때,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지난 2026 WBC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던 셰이 위트콤이었다.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활짝 웃으며 맞아주었다.
“그 경기, 정말 재밌었어요. 야구가 얼마나 좋은 스포츠인지 새삼 느꼈죠. 우리 팀 선수들, 진짜 잘할 수 있어요.”

위트콤은 WBC 한국 대표팀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을 빛냈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그는 이번 WBC에서 태극마크를 달 자격을 얻어 체코전 데뷔 경기에서만 2홈런 3타점을 터뜨리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어머니를 이런 방식으로 기리고 대표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영광이에요.” WBC 내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정후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일본 선수들의 MLB 유입이 확실히 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근데 한국 선수들도요 — 이정후, 타율로 완전히 치고 나가고 있잖아요. 정말 대단하게 잘하고 있어요.”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김혜성 이야기도 나왔다. “트리플에이 다저스전 때 봤어요. 예전에도 만난 적 있고요.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잠시 클럽하우스 한쪽을 바라보더니 그가 말을 이었다. “기쿠치한테 인사하러 가야 하는데 아직 못 봤어요.” 기쿠치가 부상명단에 올라있지만 클럽하우스에는 나와 재활훈련을 한다는 말을 전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꼭 가서 인사해야겠어요. 좋은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경기는 에인절스가 말해줬다.

우레냐는 최고의 커맨드가 아닌 날이었다. 107구를 던지며 5이닝을 간신히 채웠지만, 그 안에 담긴 건 기술보다 승부욕이었다. 커트 스즈키 감독은 경기 후 이렇게 말했다. “최고의 커맨드는 아니었지만, 경기를 끌고 나가려는 그 승부욕이 결국 해냈어요. 그건 가르칠 수 없는 겁니다.” 마지막 타자에게도 98마일을 꽂아 넣은 우레냐는 시즌 승리를 추가했다. 타선은 그 뒤를 통쾌하게 받쳐줬다. 홈런, 볼넷, 주자 뒤에서 치기, 전력 질주 — 에인절스가 가장 에인절스다운 야구를 펼친 밤이었다. 최종 스코어 10-1. 어제의 패배를 단숨에 씻어냈다.

짧은 대화였지만, 야구라는 언어가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장면이었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미국인 내야수가 원정팀 유니폼을 입고 에인절스 스타디움을 찾은 오늘, 그 연결의 온기는 클럽하우스 한편에서 조용히 피어올랐다. 7회 1번타자인 제레미 페냐의 대타로 나서 나머지 이닝 유격수 수비까지 — 짧지만 그답게,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 밤이었다.
<석승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