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새 5월이다.
셰익스피어는 봄을 가리켜 ‘젊음의 거울’이라 했다.
그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은 5월 첫날 메이데이(May Day)의 풍습에서 태어났다. 이 날 젊은이들은 새벽에 숲으로 달려가 꽃을 꺾어 왕관을 엮었다. 신분과 이성의 경계를 잠시 허무는 날로 위계가 바뀌고 금기가 풀리며 웃음이 두려움을 몰아내는 축제의 날인 셈이다.
셰익스피어는 5월엔 그렇게 ‘한 번쯤 미쳐도 된다’고 했다.
허나 5월은 시작의 달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 이후를 묻는 달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우며 살아갈 것인가? 다시 시작된 삶 위에 어떤 의미를 남길 것인가?
마침 오늘 5월 8일은 81년 전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다. 인류는 이 날을 VE Day (Victory in Europe Day)라 부른다. 하지만 승전의 날이라기 보다는 종전의 날이 더 맞는 말일게다.
전쟁이 멈춘 날, 런던과 파리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울며 서로를 껴안았고,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내일을 상상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이 끝낸 것은 전쟁이라는 사건이지, 전쟁이 만들어낸 단절까지는 아니었다.
이는 묘하게 단절된 세대의 한 사연을 떠오르게 한다. 카프카는 1919년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평생 쌓아온 공포와 그리움, 원망과 사랑을 수십 페이지에 쏟아냈다.
그러나 그 편지는 끝내 부쳐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에서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해서 아버지는 아들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 우리 주변은 부치지 못한 그런 편지들로 가득하다.
더구나 전쟁은 그 단절을 더욱 깊게 만든다.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된 후 지금 해협 안에 갇힌 선박이 2천 척, 선원이 2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지 두 달이 넘은 그 수로 안 배 위에서 두 달째 꼼짝 못 하고 있는 거다. 그러고 보면 셰익스피어의 메이데이는 일종의 ‘허락된 탈주’였으나 호르무즈의 5월은 탈주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야말로 응급구조 메이데이인 것이다.
그런 와중에 희망 찬 축제에 미쳐 볼 기회도 상실한 채 전쟁 여파에 매몰된 가운데 어린이날, 페르시아만에서 한국 화물선 ‘HMM 나무호’에 불이 났다. 선원 24명이 그 안에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이런 세계를 물려줘도 되는지 조용히 거듭 되물었겠지만 그 질문 조차 부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지 여든 한 해가 지난 오늘에 호르무즈의 수로는 여전히 막혀 있고, 세대 간, 국제간의 서랍도 여전히 잠겨 있기 때문이다.
1903년 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쓴 편지에서 ‘당신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인내를 가지십시오. 그러면 먼 훗날, 서서히 답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라고 했다. 아름다운 말이다.
허나 그 기다림은 사치일 수 있다. ‘서서히 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 느린 성숙의 시간을 허락받지 못하는 사람들 중 그들이 있어서다. 카프카의 편지는 영원히 닿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릴케에게서 방향을 찾아 본다. 답이 없다고 해서 질문마저 포기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서랍을 열어 보라는 것. 전쟁이 왜 시작됐는지, 누가 이 단절을 끊어낼 수 있는지?
인류는 전쟁을 끝내는 법을 알고 있다. 그것을 81년 전에 이미 해봤으니까. 허나 문제는 기억이 아니라 의지에 있음이다. 아직 5월은 가지 않았다. 조속히 해협이 열리기를, 그리고 서랍이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